신나는 지구여행과 체험/한국

부여 부소산성 - 궁녀가 진짜 삼천이었을까?

doggya 2012. 10. 26. 06:24


오늘 여러분과 함께 갈 곳은 백제의 옛수도 부여.

그 중에서도 부소산성이 되겠어요.



오래 된 기억 속에는 부여 그러면 낙화암 그리고 삼천궁녀가 젤로 먼저 떠오르지만, 예까지 왔으니 부소산성도 둘러 봐야겠지요?



젤로 먼저 찾아간 곳이 낙화암이었어요.

낙화암으로 들어서면 젤 먼저 눈에 띄는게 바로 이 백화정.

전 바위가 낙화암 그리고 이 정자가 백제시대부터 있었던 건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네요.


이 정자는 1929년 당시 군수였던 홍한표가 제의를 해서 부풍시사라고하는 시우회에서 세웠다고 하네요.

그리고 백화정이란 이름은

중국 소동파가 혜주에 귀양 가 있을 정에 성밖의 서호를 보고 지은 '강금수사백화주'라는 시에서 취한 것이라고 하는군요.


유래를 알고 나니 낙화암의 이미지와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것이 어쩐지 좀  ~~ ㅠㅠ



낙화암 쪽으로 내려가다 올려다 본 백화정인데, 이 정자 때문에 낙화암으로 내려가는 길이 빙빙 돌아가게 되어 있더군요.



난간에 기대어 잠시 강 상류를 올려다 보고 다시 낙화암으로 내려가는데.....



한이 서린 궁녀들의 넋인지 숨어 핀 작은 꽃이 참 청초하고 애련하고 아름다워 눈길을 끌더군요. 



낙화암에서 내려다 보니 일엽편주~~



어 ~~ 황포돛대다 ~

물론 모터로 가는 유람선이지요. ㅎㅎㅎ



그런데 아무리 봐도 여기에 궁녀가 삼천명이 떨어졌을 거 같지가 않아요.

그러기에는 물이 그리 깊지도 않고 ...... 너무 따지는건가?

혹시 그 당시에는 물이 더 깊었을지도 모르쥐 ~~ 하지만 ~



바로 밑에 있는 옛날과 같은 크기의 조룡대를 보면 그 것도 아닌 거 같아요.


당나라 군사가 백제의 왕궁을 공격하기 위해서 백마강을 거슬러 오던 중 갑자기 풍랑이 일어 진군을 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하네요.

그때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수소문하여 그 연유를 알아내고는

바위에 앉아 백마의 머리를 미끼로 강에 던져 백제 무왕의 화신인 청룡을 낚아 올린 곳이라고 하는군요.

그리하여 용의 조화를 막고 풍랑을 멈추게 했다고 하는데, 아직도 바위에는 발자욱이 남아 있다고 하네요. 우쨋든 ~~ ㅎㅎㅎ



바위에 우뚝 솟은 백화정을 올려다 보면서 이번에는 고란사로 갔어요.



이 사찰의 이름의 유래는 절 뒤에 있는 암벽에 자라고 있는 고란초에서 온 것이라고 해요.

고란사는 백제 말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 만 할 뿐 건물은 없고

현재의 건물은 정조 21년(1787년)에 은산 숭각사를 옮겨 개건한 것이라고 하네요.



절 뒤쪽으로 돌아가니 절벽 바위 위쪽에 자라는 고란초를 볼 수 있고 그 밑에는 고란약수가 있었어요.


고란초는 강가 절벽이나 산지의 그늘진 바위 틈등에서 자라는 소형의 양치식물이라고 하네요.

전설에 따르면 백제 임금이 항상 고란사 뒤 편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약수를 애용하여 매일 사람을 보내 약수를 떠오게 했답니다.

이때 고란약수터 주변에 자라는 기이한 풀이 있어 이름을 고란초라 부르고

약수를 떠 오는 궁녀들이 물동이에 고란초 잎을 한 두 개씩 띄워 옴으로써 그 물이 고란약수라는 것을 증명했다고 합니다.


또 다른 전설에는 고란약수를 한잔 마시면 삼년씩 젊어진다고 하며 약수를 마시고 갓난아이가 된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이 곳을 다녀 온 후로 한 삼년을 젊어 보인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어요. ㅎㅎㅎ



고란초가 자라는 절벽 한 쪽 구석에 사당 같은 것이 있었는데, 삼성각이라 ~~ 불당은 아닌 모양이네요.



안엘 들여다 보니 부처님을 모시는 곳이 아닌 용왕과 산신등을 그린 탱화를 모시는 것이 좀 의아했어요.



나오는 길에 앞을 가로막는 조그만 종각이 있었지요.

영종각이라고 하는데, 삼천궁녀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서 고란사에서 마련한 청동종이라고 하네요.

저는 종 보다도 지붕 꼭대기에 올라 앉은 탑 모양의 돌이 더 관심이 있어서 종 대신 찍었지요. ㅎㅎㅎ



그리고 지붕 밑에 조각해 놓은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이 너무 멋있어서... ㅎㅎㅎ


이제 낙화암도 고란사도 보았으니 산성을 한 번 걸어 볼까요?



연리지라는 조그만 안내판에 끌려서 길 옆으로 들어 가 보니.

가까이 자라는 두 나무가 맞닿은 채로 오랜 세월을 지나면 서로 합쳐져 한 나무가 되는 현상을 연리지라고 한다네요.

두 몸이 한 몸이 된다하여 남녀 간의 애틋한 사랑과 비유를 한다고 해요.

그래서 연리지는 사랑 나무라고도 부른다고 하는군요.

그런데 저렇게 뒤엉키면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답답하지 않을까 ~~ ㅎㅎㅎ



조금 걸어가니 커다란 누각이 하나 나타나더군요.

이 지점이 부소산성에서 가장 높은(해발 106 미터) 곳인 송월대인데 백제시대에 망대 역할을 해 오던 곳이라고 해요.

그 곳에 1919년에 관아 정문이던 개산루를 옮겨 짓고 사자루 떠는 사비루라고 이름했다고 하는군요.


구조는 2층으로 정면으로 3칸, 측면으로 2칸이래요.

2층에는 누각을 설치하였으며 지붕은 겹처마 팔짝지붕(이제 잘 아시죠?)으로 되었어요.


건물 정면에 조선의 마지막 의친왕 이강이 쓴 '사자루'라는 현판이 걸려 있고

백마강 쪽으로는 해강 김규진이 쓴 '백마장강' 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어요.


그러고 보니까 광화문이 몇 미터 빗나가 있다고 다 뜯어서 새로 지을 때 참 못마땅했는데.... 그런 일들이 많이 있었군요. ㅠㅠ



사자루에서 내려 오다 보면 만나는 길이 '태자골 산책로'라고 하는데,

백제의 왕자들이 이 길로 산책을 했다고 하네요.

진짜로 그 그 시대부터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길 정도로 주위의 나무들이 너무 어리네요.

또한 양 옆에 조성되기 시작한 꽃무릇은 근래에 심기 시작한 거 같아요.



아 ~ 드뎌 낙화암의 주인공인 삼천궁녀의 영혼을 기리는 사당이네요.

궁녀사



참으로 조촐하고 간단한 내부에는 삼천궁녀의 영정이 모셔져 있어요.

아마도 한 사람이 천명씩을 대표하는 가봐요.



워낙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산성이라서 굳이 성을 쌓을 필요는 없었는지 이렇게 흙더미로 만들어진 산성의 흔적이 있네요.



이 곳은 군창지로 부소산성의 동쪽 정상부에 위치하고 있어요.

1915년 이 곳 땅 속에서 쌀, 보리, 콩등의 불에 탄 곡식이 발견됨으로써 군량미를 비축해 두었던 창고라는 것이 알려지게 되었다고 해요.



1981년과 1982년 두차례에 걸친 발굴 조사 후에 건물의 규모가 밝혀 졌답니다.

건물의 위치는 ㅁ 자 모양이고 가운데는 공간을 두고 동서남북으로 건물을 배치했다고 해요.

길이는 70미터이고 넓이는 7미터, 그리고 깊이는 47센티미터 정도 였다고 하는군요


지금도 이 일대를 파보면 불에 탄 곡식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는군요.

주변에서는 분청사기 조각들이 다량으로 출토되어 이 군창지의 조성연대를 고려말에서 조선초로 보고 있다고 하네요

그런데 제가 옛날 역사시간에 배운 것은 그 탄 곡식들은 백제가 당나라와 싸울 때의 것이라고 같은데.....  기억을 고쳐야 겠네요. ㅠㅠ



부소산성 입구에 있는 옛날 박물관이에요.

박물관인지 알고 구경하려고 했더니 지금은 문화회관으로 쓰이고 있다네요.



참 독특한 건물인데....

그렇담 현재의 박물관으로 가 볼까요? 가만 ~~

그 전에 배를 채워야 할 거 같아요. ㅎㅎㅎ



시원한 막국수와 수육

흠메 ~~ 맛 있는 거 ~~ 쥑여주대요. 이 국수 생각하면 지금도 침이 꿀꺽 ~~~

국물을 한 방울도 안 남기고 싹싹 ~~ ㅎㅎㅎ



어 ~ 깃발이다 ~~ 전령이다 ~~~ ㅎㅎㅎ

잠시 백제시대로 돌아가게 해 주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