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지구여행과 체험/한국

부여 백제 박물관 - 백제인의 얼굴과 변해가는 한국인의 얼굴

doggya 2012. 10. 30. 03:07


궁남지를 떠나 간 곳이 백제 박물관이었어요.

마침 백제인의 얼굴이라는 특별 전시회를 하고 있더군요.

그리고 한 가지 맘에 꽉 ~~ 들었던 것은 이 박물관이 올 해 말까지는 입장이 전혀 무료라고 하네요.



그 동안 발굴된 물품들 중에서 백제인의 얼굴이나 모습을 알 수 잇는 것들을 모아서 전시했더군요.



방울도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게 참 귀엽지요?




이건 정체가 뭔지 확실히 알 수는 없었지만, 얼굴인 거 만은 확실하네요. 그쵸? ㅎㅎㅎ



깨진 도기에도 얼굴을 그려 넣은 걸 보면 이 도기를 만든 사람의 낙관 같은 것일까요?



이건 지붕에 기와를 얹을 때 밑에 놓는 장식품..... 가만 이름이 뭐더라 ~~ 기와의 얼굴도 나랑 같이 슬픈 표정이네요. ㅠㅠ



이건 종이에 그린 그림이었는데 아주 해학적인 게 재미있지요?



용도가 무엇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재미있는 흙인형들이었어요.



무엇을 묘사한 것인지 ~~~~~ 알 거 같기도 하고 모를 거 같기도 하고 ~~ ㅎㅎㅎ



그렇죠? 이 분도 제 말에 공감한다고 같이 웃네요. ㅎㅎㅎ



이 작품은 얼마나 작은지 앞에다 돋보기를 설치해 놓았더군요.



묘에서 나온 뼈를 가지고 인물을 복원해 나가는 과정을 영상으로 소개하고 있더군요.



이렇게 해서 다시 태어난 사람은......




이 사람들이 하늘에서 보고 있다면 기절을 할거에요. 그쵸?

아니 ~~ 내가 어떻게 저기에 ~~ ㅎㅎㅎ



처음엔 이 가계도를 그냥 슬쩍 보고 지나쳤는데, 가다가 생각하니 참 재미있다는 생각에 다시 뒷걸음질.... ㅎㅎㅎ

글을 읽을 수 있도록 세부분으로 잘라 봤어요.





단일민족이라고 했던 우리의 과거가 물론 옳은 것이 아니지만,

지금은 다문화 가정이 많이 생기면서 위의 것보다 더 빨리 한국인의 모습이 변해가고 있는 거 같아요.



특별 전시회장을 나와서 본관으로 갔지요.

거기에 또 특별히 전시되어 있는 것이 바로 이 향로였어요.


1993년 12월 23일 부여군 능산리 절터의 목곽 수로안에서 발견되었으며 국보 제287호로 지정되었다고 하네요.


백제금동대향로는 전체 높이가 62.5cm이며

용 모양의 향로 받침, 연꽃이 새겨져 있는 향로의 몸체, 산악도가 솟아잇는 향로 뚜껑, 뚜껑 위의 봉황 장식의 네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향로 본체의 가운데 테두리의 구름 문양 아래에는 연꽃이 핀 연못이 있고, 그 위인 뚜껑에는 봉우리가 세 개 있는 산들이 있지요.

이 산에는 말을 타고 사냥하는 사람, 신선으로 보이는 사람들, 호랑이, 사자, 원숭이, 멧돼지, 코끼리, 낙타 등 많은 동물들이 장식되어 있으며

곳곳에 폭포, 나무, 불꽃 무늬, 귀면상 등이 있어요.



이 향로는 백제가 부여로 도읍을 옮긴 후 정치적 안정을 되찾은 7세기 초의 백제인들의 정신세계와 예술적 역량이 함축되어 이루어진

백제공예품의 진수라 하는데, 뚜껑에 새겨진 조각들을 보니 참으로 정교하고 또 장식인 것 뿐이 아니고 그 안에 이야기가 있는 거 같았어요.


제단 모양으로 꾸며진 정상에는 봉황이 날개를 펴고 춤추고 있고, 그 밑에는 5악사가 있는데 이들은 소, 피리, 비파, 북, 현금을 연주하고 있지요.

그리고 그 주위의 다섯 봉우리에는 기러기로 보이는 새가 봉황과 함께 춤추는 형상이 있어요.

향로의 몸체에는 연꽃이 있는데 그 위에 갖가지 새와 물고기가 새겨져 있고 한쪽에는 무예를 하는 인물도 있고요.


마침 어디서 높은 분들이 왔는지 기자들을 포함한 일련의 사람들 한테 담당자가 자세하게 설명해 주는 것을

따라다니면서 귀동냥한 것이랍니다. ㅎㅎㅎ



우리의 예술품들이 일본의 어느 지방으로 전래 되었는지에 대해서 인데 이 것 또한 조의 관심을 끌었지요.


박물관을 나왔을 때는 이미 해가 아주 낮아져 있었어요.



해가 지기 전에 간다고 부지런히 갔는데, 문 닫을 시간이 거의 되어서 인지 그냥 들어가서 얼른 보고 나오라고 하대요.

고맙습니다. ^-^


이 곳은 부여 정림사지에요.

백제가 사비로 도읍을 옮긴 직후에 세운 절터라고 하네요.

백제 시대의 전형적인 1탑 1금당식 이지만, 백제시대의 절 이름은 알 수 가 없다고 해요.

1028년에 만든 기와에 '정림사' 라는 명문이 있어 고려 시대의 절 이름이 정림사인 것으로 밝혀졌답니다.



남북 직선상에 중문, 탑, 금당, 강당을 배치하고 주위에는 회랑으로 둘러친 형태라고 하는군요.

그리고 중문 남쪽에는 사각형 연못과 남문터가 있는 것이 배치의 특징이라고 해요.

사각의 연못은 조 ~ 위의 사진에 보시면 앞에 보이는 것이에요.



이 절터의 규모는 동서 약 62미터, 남북 약 120미터라고 하니 작은 것은 아니겠지요?

발굴 조사를 통해서 민무늬 토기편이 출토된 청동기 시대 문화층과 정림사 창건 이전의 백제시대 문화층, 고려시대 문화층등이 발견되었답니다.


위에 보시는 부여 정림사지 5층 석탑은 백제가 부여로 도읍을 옮긴 후 6세기 말에 세워진 것이라고 해요.

탑의 모서리에 세운 배흘림 기둥이나 넓은 지붕돌 등을 따로 만들어 짠 탑으로 부분재료를 보면 목조 건축의 구조를 모방했다고 하네요.


익산 미륵사지와 함께 백제 시대 석탑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것인데,

정돈된 형태도 그렇고 아름다움이 백제인의 솜씨를 엿볼 수 있는 것이라고 해요.


한가지 너무나 안타까운 것은....

1층 몸체돌에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백제를 멸망시킨 다음 그 공적을 새겨 넣었다고 하네요.

이럴 수가 ~~~ ㅠㅠ



이 곳은 강당지였다고 하는데, 현재 강당지 자리에는 석불좌상의 보호각이 있답니다.

강당지는 석탑 뒤에 있는 윗 사진에서 보시게 되는데, 석탑 중심으로 부터 북쪽으로 57.5 미터의 거리에 있대요.

건물은 정면 39.1미터, 측면 16.3미터의 건물인데, 고려시대의 강당은 이보다 작았다고 하는군요.



강당지에 세워진 건물안에 보면 이런 부여 정림사지 석불좌상이 있어요.

이 불상은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하는데 불타고 심하게 마모되어 대좌와 불상이 형체만 남아 있어요.

하지만, 이 불상은 남원에 있는 만복사의 대좌와 함께 11세기 고려 불상의 양식을 보여 주고 있다고 해요.


불상을 보면 그 어깨가 상당히 좁은 것을 볼 수 있어요.

이렇게 좁은 어깨와 가슴으로 올라간 두 손의 표현으로 봐서 진리를 나타내는 비로자나불상일 가능성이 높다고 하네요.

머리와 갓은 후대에 복원한 것이라고 해요.


이 석불이 있던 절은 6세기 중엽에 창건된 것이라고 하는군요.

고려 초에 절을 다시 세울 때 백제시대의 강당자리를 금당으로 삼아 이 석불을 주존불로 모셨다고 하네요.


이리저리 다니다 보니 벌써 해는 서산으로 넘어가고.....

떠날 시간이 되었네요.



비록 현대에 만든 건축물이긴 하지만, 보기 괜찮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