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박 히타카츠에서 하룻밤을 자고나서 느낀 후기.
별을 주라면 3개 준다면 참 후하게 준거라는 생각이에요.
일단 방에 들어가 이불을 펴니 이불도 요도 너무나 꿉꿉해서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는데.....
요를 펴 보니 머리카락이 나오더군요.
이불의 시트는 꾸기꾸기 ~~
전 사람이 쓰던 것을 그냥 개켜 놓았던 거에요.
정말로 기분이 팍 상하더군요.
방에서는 뜨거운 물을 먹을 수 있는 그 흔한 전기 주전자 하나 없고
옷을 걸을 데도 없고 거울도 없고....
더 한 건 아침에 더운 물이 안 나와 샤워를 할 수 없었다는 거였어요.
한국돈으로 10만원이 넘는 숙박비를 지불한 곳의 실태였어요 ㅠㅠ
처음에 들어갔을 때는 아침 저녁을 제공한다고 했어요.
그런데 손님이 없어서 저녁밥을 안 하니까 자기네가 하는 식당에서 먹으라고 그러더군요.
그러더니 막상 저녁이 되니 우리가 저녁값을 지불해야 한다는 거였어요.
이렇게 왔다 갔다 하는 민박집 ~ 정말 별 3개도 후한 거라는 생각이 안 드시나요?
차라리 일본 사람이 하는 숙박시설에 들어갈 걸 그랬다는 후회 ~~ 하지만 때는 늦었지요. ㅠㅠ
아침밥은 밥통에 있던 거.
국은 인스탄트를 물에 풀은 거 같은 거
계란 후라이는 차갑고.
두부도 냉장고에서 금방 나온 거 같은 거
실망 덩어리였어요. ㅠㅠ
여기를 떠나자 ~~
버스 터미널로 갔지요.
현재 있는 히타카츠에서 남쪽의 항구인 이즈하라까지 가는 버스의 요금은 3,750엔인데 표를 달라고 하니 이 표를 주네요.
일금 1,000 엔
이거 한장이면 오늘 하루 무한정으로 타고 내릴 수 있다고 이걸로 사라고 하면서 밖에 까지 나와서 친절하게 설명해 주네요.
와 ~~ 돈 벌었다. ㅎㅎㅎ
표를 사고는 주위를 둘러 봤어요.
어느 시골의 버스 대합실 같은 대합실
열심히 청소를 하고 있는 저 버스가 바로 우리가 타고 갈 버스에요.
지도에서 보시다시피 대마도는 제주도 보다도 더 가까이에 있는 섬인 건 다 아시겠지요?
아래의 지도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제일 북쪽의 히타카츠 항구로 들어갔다가
고구마 같은 대마도를 쭉 종단을 해서 내려와 남쪽에 있는 이즈하라로 나왔어요.
2시간 반에 걸친 시간을 대마도의 북쪽 끝에서 남쪽 끝으로 달리게 됩니다.
섬 사이사이로 바닷물이 들어와 만들어진 만들이 참 많이 눈에 띄었어요.
그리고 그 곳에서는 진주를 양식한다는 양식장도 보였구요.
지나가는 마을들이 참 깨끗하고 보기 좋았어요.
이 섬에 이렇게 높은 산들이 있다는 거 의외였어요.
벌써 모내기가 끝난 논들도 있고 또 작물을 심어 놓은 곳들도 보였지요.
어디 가나 꼭 가는 곳 묘지 ㅎㅎㅎ
이건 그냥 지나치는 묘지를 찍은 거랍니다.
우리와는 다른 문화지요?
참 편안해 보이는 시골 풍경이었어요.
이렇게 계속 달려서 드디어 이즈하라에 도착했어요.
오른 쪽은 버스 터미널 사무소이고 왼쪽은 관광 안내소에요.
일단은 나중에 배탈 곳을 알아두기 위해서 버스를 타고 항구로 가보기로 했지요.
오늘 아침에 떠난 히타카츠보다는 큰 도시이고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라고 하네요.
하지만 저는 히타카츠가 훨씬 좋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만약 한 곳을 선택해서 가라면 히타카츠에 가고 싶어요. 다시 갈 일은 없겠지만 ㅎㅎㅎ
시내를 돌아보기 전에 일단 점심을 먹어야 할 거 같아 스시를 잘 하는 곳을 물으니 근처의 식당을 소개해 주네요.
가는 곳곳마다 조선통신사를 기념하는 흔적들이 여기저기서 보였어요.
식당을 찾아가면서 건너 편 마을을 한번 보고
우연히 발견한 건너편의 묘지도 한 장 찍어보고..
드디어 식당을 찾았어요.
말차 ~~?
뭔가 한 번 마셔보자
엥 ~~ 이거 그냥 녹차네 ~~ ㅎㅎㅎ
이 곳은 회전스시였어요.
테이블마다 수도꼭지처럼 설치된 곳에서 뜨거운 물을 부탁할 필요도 없이 그냥 마실 수 있었지요.
옆 테이블은 단체 손님을 위해서 미리 만든 스시로 준비를 해 놓는데 그 종류가 정말 말이 안 되게 초라하더군요.
그래서 단체는 값은 싸지만 어디 가서나 대접을 제대로 못 받는 거 같아요.
접시의 색깔에 따라서 값이 메겨지는데 스시의 맛은 참 좋았고 신선했어요.
여자 둘이서 꽤나 먹었지요?
게다가 우동까정 ~~ ㅎㅎㅎ
배도 부르겠다. 이제 슬슬 걸어서 시내 구경이나 해 볼까?
조선 통신사비가 여기저기 많은 걸 보면 그 당시에는 조선과의 교류가 상당히 활발했던 모양이었어요.
쓰시마역사민속자료관 옆에 세워진 조선통신사의 비에요
역사 자료를 보면
통신사 일행은 정사(正使), 부사(副使), 종사관(從使官) 등 관리를 비롯해 학자, 문인, 화가 등 300∼500명으로 구성된 정치·문화사절단이었다. 한양을 출발한 일행은 부산을 거쳐 쓰시마에 상륙한 뒤, 다시 수로와 육로를 이용해 에도(江·현재 도쿄)까지 이동했다. 이들이 왕복한 거리는 4천㎞가 넘었으며 6개월∼1년에 걸친 긴 여정이었다.
비운의 덕혜옹주의 결혼을 축하하는 기념비가 있다니 한 번 가 봐야겠지요?
제가 사전에서 찾은 덕혜옹주에 관한 글을 간단히 옮겨 봤어요.
덕혜옹주(德惠翁主, 1912년 5월 25일 ~ 1989년 4월 21일)는 조선의 제26대 왕이자 대한제국의 초대 황제였던 고종과귀인 양씨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다. 황녀로서 덕혜라는 호를 하사받기 전까지 ‘복녕당 아기씨’로 불렸고, 1962년 ‘이덕혜’(李德惠)로 대한민국의 국적을 취득하였다.[1] 일제 강점기 경기도 경성부 덕수궁에서 태어나 경성일출공립심상소학교 재학 중에 일본의 요구에 따라 유학을 명분으로 도쿄로 보내져 일본 황족들이 공부하는 학교인 여자학습원에서 수학하였다. 1931년 옛 쓰시마 번주 가문의 당주이자 백작 소 다케유키와 정략 결혼을 하여 1932년 딸 소 마사에를 낳았다. 그러나 이즈음 조울증, 우울증과 더불어 정신장애인 조현병(정신분열증) 증세를 처음 보였으며, 결혼 이후 병세가 악화되었다. 1946년부터 마쓰자와 도립 정신병원에 입원하였고, 1955년 이혼하였다. 1956년 8월 26일 딸 마사에가 산에서 자살하겠다는 유서를 남기고 실종되었다.
1962년 대한민국으로 귀국하여 창덕궁 낙선재 내의 수강재에서 거주하다가 1989년 사망하였다.[2] 유해는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의 홍유릉 부속림에 안장되었다.
왕녀가 아니었다면 평범한 여자로써 행복하게 살 수도 있었을 덕혜옹주와 남편의 사진이랍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어린 시절에는 부귀와 영화보다는 어린아이 답게 뛰어 놀며 정신적인 스트레스 없이 보호를 받아야 정신이 건강해지고
건강한 성인으로 자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거에요
그렇지 못한 요즘의 어린 아이들에 대해 참 안 된 생각이 드네요. ㅠㅠ
기념비를 보고 나오는 길에 복원한 옛성의 모습이에요.
사람이 없어보이지요?
이 사진을 찍기 위해서 거의 10분 이상을 기다렸어요.
워낙 많은 한국 관광객들이 몰려 다니는 바람에 한참을 기다려야 했지요. ㅎㅎㅎ바다
이렇게 돌아다니다 보니 시간이 조금 남긴 했지만 그 시간 동안 가고 싶은 곳이 없어서 그냥 부두로 갔어요.
거기서 두 시간을 기다리다 다시 한국으로 오는 배에 올랐지요.
히타카츠까지는 한시간 10분이었지만 이즈하라는 2시간 30분 정도의 시간이 걸려요.
피곤하기도 하고 꾸벅꾸벅 졸다가 사람들의 함성 소리에 놀라 보니
바다에서 돌고래들이 배를 따라오면 물위로 뛰어 오르고 있었어요.
카메라를 들이대긴 했지만 성공적으로 담진 못했어요.
그러다 보니 벌써 오륙도가 보이네요.
이렇게 보니 오륙도가 아니고 네개의 섬 밖에는 안 보이네요. ㅎㅎㅎ
이렇게 대마도로의 일박이일 여행이 끝을 냈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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