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행복님의 삶

♧남한산성트래킹♧돌조각 공원

doggya 2019. 12. 30. 17:07

♧남한산성트래킹♧


#그녀의 여행기
#자작글

남한산성 신라시대 문무왕때 주장성옛터 기반으로
조선시대 넘어와서 인조때 축성

4개의 문이 있으며 8개의 암문
절이10 개나 있고
국가 재난시 국가의 주요 부서 가있고


임금의 행궁시 상궐 73칸반
인조 2년축성
하궐 154칸

숙종때는 종묘를세워 좌전을만들고
관아 창고 군사훈련 을 할수있는곳
8도 승려들이 동원되고

수비는 총융정
성 완성시는 수어청

전 좌 중 우 후 5명을두고각 곳마다
지금 현재는 서장대만 남아있다고 합니다

막대한 돈과 인력을들 여서

만들었으나 병자호란이 일어나고
역사의뼈아픈 인조대왕이 피신했던곳
남한산성 이다 역사의 현장.


현장 어이없이성문을 열어줘야 했고

원래남한산성 백제의 시조 온조의 성터였다고 합니다
2014년
세계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
@@@ㅋㅋㅋ
세상에 전 남한산성 이 성남시인줄알았더니 경기도 광주시라서
깜놀 무식이통통통...ㅋㅋㅋㅋ

더욱자세한것 컴퓨터에서 포스팅 할께요
남한산성하면 우선 성곽만 생각할것이다

 그많은 것을 보여드릴순없고 미세먼지 가있고 비

눈소식 일기 예보를 접하고 오후에나

올려나 하고 창문을 여니 비가내리고
있어서 우산을 챙기고 백펙메고서


길을 나선다 전날 송년회로

늦게마신커피가 날밤을 지새우고
약간의 피로가 누적되어도


마음먹은일이라 난 산성역에서
9번버스를타고 종점서 내려서 한참
도보로 이동해서 동문을 통과해서


사람들이 잘 모르는 돌탑공원을 구경
별별희안한 돌탑 사람 십이간지
동물 그리고 사랑하는 연인

맷돌 동물들의먹이통 호랑이수염까지
턱을괴고 있는모습 악기다루는모습
물깃는 여인 제주해녀

신기해서모든석물 담을수 없었다



약간은 애정씬강한 석물들도 하지만
인터넷에서 본 농도찐한것은 아무리 두리번
거려도 없었다 지금 검색해보니


언제부터인가 통채로 사라졌다고한다
그리고 또 어떤것은 남성의 주요부위를
훼손해 버린 석물도 있었다

석물을 구경하고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남한산성 꺼죽데기랴도 보고가야지 동서 남북 방위가

가까울줄 알았더니 세상에 만상에
도로에는 가끔 차도 씽씽~~쌩쌩 언젠가

성북에서 만해생가가 너무소홀하고

동상도 도로가에 만해 박물관 주변에
또다시 중앙주차장에서 북문으로 향했다
인증샷정도 남겨야지 숨이턱턱 조금

숨차도 비만인관계로 눈비가 내린탓으로 길이 미끄려웠다 안전사고
발발했다간 늘 발바리처럼 다녀서


사고 낸다고 내남자에게 죽음이다

 한발한발 뚜벅이처럼 눈 비가 녹아도 미끄려웠다
북문으로 올라가는길은 팬션과

음식점ㅇㅣ 즐비하고 나처럼

 우리남한산성 다녀온거야 .셀카찍는
친구인지 연인인지 바라보면서


북문어디에요 ~?조금 올라가면 되요
산행객들은 늘 그렇게 말한단다
비록 멀지랴도 격려차원에서

나도 북문 현판과 북문 위에까지
다녀온뒤라서 자신있게 대답
우리남한산성 다녀온거야 네네

미소로 답례 그래요 우리 남한산성
다녀 온거에요
열심히인증샷셀카 분들을 뒤로 하고

서문 이정표를 보았으나 길도 미끄렵고
날도 어둡고 갈길을 서두른다
내가 방문할시 늘 인적 이 없다


내려와서 버스를 타려다가 동문 북문찍고

 또 남문을 향하여 간다
남문역시 어찌 성벽을쌓았을까


설명을 읽어 볼새도 없이 정신없이
사진을 담는다 나중에 어디가 어디인지도

 모르니 검색했을때 때론


어떤방 향이 어떤곳이 지름길인지
만나는 분에게 묻고 직접경험하므로써
정확한 정보를 확실히 알게 되었을때

기쁨 버스운행도 평일엔 9ㅡ1운행안한다는걸

기사님으로알게된정보 무슨이유에서인지

9번 버스정류장
9ㅡ1버스정류장도 달럈다
노선이 다른가 갸우뚱~~

한양도성 성곽을 오르고 바라보았을때
남한산성 또다른 느낌 옛날 우리조상들은

상당히 과학적이고 똑똑하고 사물을 대할때 나의피로는


어느새 힐링이된다 여려사람들과 우르르 가면

내가 보행이늦고 상대에게
민폐끼칠까봐 두려움 그래서 조용히


세월아 네월아 힘들면 쉬어가고 내가원하는

 포스팅 지장초래할까봐
아쉬움 해가길면 또다른 계절에

넉넉하게 시간잡고 성곽을 샅샅이
또다시 투어를 다짐해본다 귀추가 주목됩니다

계획해본다 앉았다가 일어나면 내옷은 흙투성이다

그이유 허리시술이후 엄첨불편 하길래 정신력 내몸달래며


일어나기에 오다가 옷도털고 할짓은 다한다 아픔 고통은 남들이 모른다
얼마만큼 아픈지 그래서 내안전


늘지켜야기에 사고 일순간이니 어느날 극성피워

대청소하다가무릎찢어져 다쳐서 늘 초긴장
장시간 걸으면 때론 무릎도 새큰새큰





와 ~~성곽 둘레길 못걸었으나 동문 북문 남문 다찍다

그것도 대만족
아니면 집에서 잉녀놀이 할텐데

나서면 천리길도 한걸음부터 나의행동에 욕심이 없이 대만족하자
하지만 조금 가파른길은 숨이차다

심폐기능이 약한가~~ㅠㅠㅠㅠ


다니다 보면 이름이같은 절도
각지역에 많구나 물론 많은돈을

해외여행이나 장거리 여행도 있지만
주말이 아닌 평일날 난 주로 둘래길 트래킹

한다 그것또한 꿀재미다 냉장고털어
교통카드 요즘 신용카드면 웬만한곳
투어 때론 우아하게 폼생폼샤하면

근사한 맛집 카페 혼밥 혼차를 즐길줄도
아는 여인이다~~ㅋㅋㅋㅋ
믿거나 말거나.....

사먹기 불편하면 도시락지참
모든것 보여드릴순없고 돌탑공원을
맛뵈기만 보여 드릴께요


함께해주신 두분 수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확실하게 가이드안내해주셔서
우리는 편하게 트래킹을 할수 있었음에


감사드립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다음을 기약하겠습니다
늘 건강하십시요


2019년 12.26.목요일

*일행 3명(본인의  카스에등록한글 )


저와함께   남한산성  구경을 해보실래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남한산성

#남한산성 역사


*남한산성은 조선시대의 산성으로 기원은 통일신라 문무왕 때 쌓은 주장성(672)의 옛 터를 활용하여 조선 인조 4년(1626)에 대대적으로 구축하였습니다.
서울의 중심부에서 동남쪽으로 25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남한산성은 지형적으로 평균 고도 해발 480m 이상의 험준한 산세를 이용하여 방어력을 극대화한 곳으로, 둘레가 12km에 이르며 산위에 도시가 있을 수 있을 만큼 넓은 분지이기 때문에 백성과 함께 왕조가 대피할 수 있는 조선 왕실의 보장처(保障處, 전쟁 시 임금과 조정이 대피하는 곳)였습니다.
또한 남한산성은 성곽을 쌓는 축성술 면에서 16세기에서 18세기까지 계속된 전쟁을 통해 동아시아의 한국(조선), 일본(아즈치·모모야마시대), 중국(명나라, 청나라) 사이에 광범위한 상호 교류가 이루어진 결과입니다. 이 기간 동안 유럽의 영향을 받은 화포의 도입이 이루어졌고, 이런 무기 체계의 발달은 남한산성의 성곽 축성에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남한산성  홈페이지서발췌 )


저는   8호선  산성역 으로  향합니다  

산성역  2번출구에서   버스9번을  타고 남한산성 정상에서   하차  

소요시간은   15분정도 걸렷나   정확하게  시간을 확인해보지  않았으나

버스가  가는길은 조금급 경사  인것같았습니다  마을은 평지라도요



차타고가는 동안 일부지방에는  눈이 내렸는지  여기도 눈이  내렸어요  비와함게요 

남한산성 역사는  삼국시데부터   고려시대  조선시대  전해진다고합니다  

처음에는  백제온조 성터였다고  전해진다고합니다

다음은 검색한자료입니다

#남한산성이 백제 온조와 직접 관련을 맺게된 것은 조선시대에 들어서이다.
병자호란 직후인 1639년 남한산성에 백제 시조 온조왕의 사당이 건립된 것이다. 온조왕 사당이 조선시대에 처음 건립된 곳은 충청도 직산현이었다. 병자호란이 일어난 후 남한산성으로 피신한 인조는 예조판서 김상헌을 온조왕 사당에 보내어 제사를 지낸 바 있다. 당시 조선사회에서는 남한산성이 온조가 도읍한 곳이라고 이해되고 있었기에, 이 곳에 피신한 인조가 국난을 극복하기 위해 온조의 힘이라도 빌리고 싶었을 것이다. 이 같은 그의 염원은 꿈으로도발현되었다. 즉, 꿈에 나타난 온조의 도움을 받아 남한산성을 공격하는 청군을 물리 쳤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조는 병자호란이 끝난 직후인 1639년 온조사당을 직산에서 남한산성으로 옮겼으며 정조대인 1795년에 숭렬이라는 명칭이 국가로부터 내려지면서, 이곳은 숭렬전으로 불리게 되었다.(남한산성  홈페이지에서 발췌)


1950년대에 들어 남한산성은 이승만 대통령에 의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가 4·19 민주화 운동 후 제2공화국때 남한산성 국립공원 지정은 무효화 되었다.
그후 1971년 3월 17일 도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1974년 광지원에서 남한산성을 관통하여 성남으로 이어지는 도로가 포장되었다.
당시 주민들은 남한산성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에게 도로가 포장되지 않은데에 따른 불편함을 호소하여 포장공사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 도로의 포장으로 남한산성 교통망은 크게 개선되었다(남한산성  홈페이서발췌 )

#연무관 (Martial Arts Training Hall, Yeonmugwan)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 6호

군사들의 훈련을 위하여 건립한 곳으로 인조 2년(1624) 남한산성을 쌓을 때 함께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연무관은 규모가 크고 육중하여 높은 기단 위에 자리 잡고 있어 멀리서도 그 자태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이다. 건물 내부 가운데에 있는 대들보에는 전, 후면에 용을 그렸고 측면 쪽 대들보에는 봉황을 그려 넣은 것이 특이하다. 연무관은 정면 5칸, 측면 4칸의 비교적 규모가 크고 높이가 높은 육중한 건물로서 멀리서도 그 자태를 알아 볼 수 있을 정도인데 정면 쪽은 2단의 기단을 축조한 이중 기단 형태이다. 이중 기단의 중앙에는 화강석 계단을 1개소 놓았다

남한산성  홈페이지서발췌


#마을의역사

남한산성내에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것은 아주 먼 과거로 올라가겠지만, 본격적으로 대규모의 취락이 형성된 것은 인조5년(1627)에 광주부의 읍치를 산성으로 옮기고 나서부터라고 하겠다. 현재 남한산성 내 마을의 행정구역은 ‘산성리’이며, 1914년 일제가 조선의 지방행정구역을 대대적으로 개편할 때부터 이처럼 불리기 시작하였다. 산성리 마을은 조선후기 광주유수부 시기에 두 개의 행정 단위로 나누어져 있었다.
광주 행궁에서 동문에 이르는 도로를 경계로 하여 남쪽은 남동, 북쪽은 북동으로 나누어진 것이다

(남한산성  홈페이서발췌 )


음식점 상호인지 모르겠어요  

버스에서  내리니 주변에는  음식점 카페가 많았습니다 


고궁에서  보았는 지붕 모양과는  특이해서요 



간간히 남한산서일대를  표시 한  그림  이동하면서요 


#도립공원

*1950년대에 들어 남한산성은 이승만 대통령에 의해 국립공원으로 지정


*4·19 민주화 운동 후 제2공화국때 남한산성 국립공원 지정은 무효화

1971년 3월 17일 도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1974년 광지원에서 남한산성을 관통하여

 성남으로 이어지는 도로가 포장되었다

* 남한산성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에게 도로가 포장되지 않은데에

 따른 불편함을 호소하여 포장공사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 도로의 포장으로 남한산성 교통망은 크게 개선되었다

*서울을 비롯한 인근 지역 주민들이 남한산성을 찾기가 매우 용이해졌다.
한편 1974년 중부면 사무소가 산성리에서 광지원리로 이전하였다.

 도립공원 지정 이후

*남한산성 문화재에 대한 보수 정비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1975년부터 1997년까지 성곽 5.1km를 보수하는데 모두 40억 3,600만원이 투입되어

남한산성은 조금씩 제 모습을 찾아갔다.
*1976년 문화재를 보호하고 공원의 시설물을 유지, 관리하기 위해 남한산성관리

사무소가 개소되었다.
특히 1980년대 중반 이후 국민들의 생활에 여유가 생기고,

자가용의 보편화 되면서 찾기 편리한 남한산성은 서울 인근의 유수한

 문화관광지로 변하기 시작하였다

남한산성 홈페이지서발췌


우리는  중앙  주차장에서  아래로  아래로 상당히 많이걸어내려왔습니다 




#동문   남한산성에는   동서남북  4개의 대문이  두고  있다고합니다

그중 우리는  3대문만  보았나봅니다 시간관계상   사진은제가 움직인  동선데로 입니다

  남한산성에는

80개의  우물과  45개의 연못이  있었다고합니다 그려고 보니  반대편에 우물같이  생긴것을 

  도로 반대편으로 본것같아요 



동문은  광주지역   좌측에위치 하고   주요교통로 

 아래로 차가  다니고 우리가 가는길도  차가쌩쌩달리고

달리고 있어서  안전이 필요햇어요  





성곽을 따라걸어 오신분들인지  갈팡질팡  어디서  오느냐고

서울 중앙주차장이  어디있느냐고    물어서    알려주고  ~~



갈때는  성문이굳게닫힌줄알앗는데 올때는 보니  성문이;열려있더군요


좌익문이라는   현판이   보입니다 

돌을  어찌저리   큰돌작은돌  가지고 잘지었을까신기하기도  해요



동문에서  한참을  내려오니  돌조각공원이  있었어요



신기한 석물들이 너무많아서  일일히담을수  없었지만  그래도 

이동하면서  무작위로  담아보았습니다






정말로  에술혼이 느껴집니다   어떻게  저렇게  섬세하게

돌에다  새겼을까요  감탄하면서  한발자국   한발자국 이동





맷돌인가요  ?



절구인듯 ~~~~~~~~~옆에것은 무엇인지  아리송 



문관 무관  

무덤을 지키는  문인석은 무인석과  

왕의 무덤이나   지체높은  사대부의     무덤앞에    세워졌다고합니다 

통일 신라시대만들어지기시작해  고려초기   문인석만 배치  

14세기에   이르러무인석과 배치  


호랑인가요  ?내눈엔   ~ㅋㅋㅋ




무엇을  의미하는지 얼굴이  ~~~~~~~~?



장승   인가요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말을  의인화한것인가요  ?



이것뭐죠    개구리인가   ㅋㅋㅋ?



코끼리  별의별 동물  석물이  인상적입니다  


뽀뽀하는 사랑하는  연인도  있어요 



돌하르방인가요  ?



행운의  다리랴고    적혀있엇어요  그래서  지나가고  지나오고했어요

2020년   경자년의   행운을 기대하면서요


6층석탑   10층석탑인가요 





그리고  개인사유지란  안내문과  무심코보니  시시티브이도   설치되어있어요 

석탑도    훔쳐갈까요   훼손하고요 


팔게인가요    ?ㅋㅋㅋ제생각입니다 



책읽는 소년  ?



염소   ?





12간지 석상같았어요    쥐소   호랑이   토끼용  뱀 말 양   원숭이  닭  개   돼지 순서별로   

있었어요 



석상이 너무많은데   석상하나에 하나에  넋을 잃고서    한참 감상했어요 


제주도  물질하는   여인같죠  ,돌하르방과   ?





다음편도    기대해주셔요 


2019년    12.19일  남한산성 돌탑공원 구경하고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