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의 글들/수필

댄싱 슈즈

doggya 2008. 6. 19. 03:20

 

 자기 의자라고 부르며 즐겨 찾던 몬트레이 바닷가 언덕에 있는 의자에 앉은 오뚜기

 

 

댄싱 슈즈 / 조세핀 김

 

살아가면서 그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어려운 일들이 참으로 많겠지만, 항상 나에게 가장 힘들게 다가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내는 것이었다.

나는 요즘 중병을 앓고 있는 사랑하는 친구 몇 명 때문에 우울한 날들이 많아졌다. 매일 죽음과 함께 하던 나의 에이즈 병동, 호스피스 병동 그리고 암 병동에서의 오랜 경험조차도 내 가까운 사람을 잃는 것에 대한 면역을 키워주진 못 했던 것 같다. 얻는 것도 그리고 잃는 것도 모두 삶의 한 부분들 일진데, 받아들이는 태도가 엄청 다른 걸 보면 내가 아직도 삶의 본질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 아주 절친한 친구인 오뚜기를 방문했다. 오뚜기는 말기 위암으로 6개월의 생명을 선고받은 뒤 현재까지 16년을 살아오고 있는 친구이다. 3년 전에는 그동안 받아왔던 열 번 이상의 항암 치료와 세 번에 걸친 방사선 치료가 허망할 정도로 병세가 극도로 악화되어 의사들이 모두 오뚜기를 포기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적극적이고 극진한 남편의 간호로 기적적으로 다시 일어나 그때 내가 붙여준 이름이 불사신이었다.

그 후로도 수시로 받아야 했던 항암치료와 얼마 전에 받은 또 한 번의 방사선 치료에 극도로 몸이 약해져 있었지만, 숨 쉴 수 있는 기운만 있으면 최대한으로 즐겁게 살다가 가겠다며 암환자 서포트 그룹인 암 환우회를 만들어 열심히 봉사활동도 하고, 죽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니 맘에 드는 거 사서 실컷 입어 보겠다고 쇼핑도 함께 가고 또 좋아하는 꽃꽂이 클래스와 라인댄스 클래스를 건강한 사람들보다 더 열심히 빠지지 않고 극성스럽게 다니며 불사신이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게 살아왔다. 자연과 여행을 좋아해서 운전할 에너지만 있으면 함께 몇 시간 떨어진 바닷가에 가서 모래 위를 걸으며 갈매기 나는 것도 보고, 바위에 부딪히는 하얀 파도가 보이는 경치 좋은 식당의 창가에 앉아서 와인도 한잔 씩 즐기며 너무나 행복해 했었다. 또한, 자신의 투병 이야기를 글로 써서 다른 사람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기를 바란다며 열심히 블로그 운영도 해 왔다.

 

오뚜기가 어린 아들을 데리고 남편과 함께 미국 땅을 밟았을 때는 다른 사람들처럼 아메리칸 드림과 야망이 있었다. 경리부서에서 일하며 이곳 사람들에게 뒤지지 않겠다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또 실력을 인정받아 매니저의 자리에까지 올라 갔으며, 최종 목적인 여성경영자의 자리에 오르고자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렸다. 그러다 보니 집에서 보내는 시간보다는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게 되고, 가족과의 시간보다는 클래스 룸과 숙제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또한, 그에 따른 스트레스와 몸을 돌보지 않았던 결과가 어느 날 암이라는 불청객으로 찾아온 것이었다.

 

오뚜기는 암에 걸린 걸 축복으로 받아들인 보기 드문 사람이다. 주위를 돌아볼 새도 없이 목표를 향해 바삐 달리며 살았을 때는 모르고 살았던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을 보고 느끼게 해 주는 계기가 되었으니 그것이 바로 삶의 축복이 아니고 뭐냐고 말하곤 했었다. 그뿐만 아니라, 16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주위의 정성어린 기도와 관심, 그리고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되겠느냐고, 또한, 남편하고 그렇게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가고 싶은 곳을 다 가는 사람도 드물 것이라면서 살아 있다는 것 자체를 참으로 즐겼었다. 또한 잘 죽기 위해서는 잘 살아야 한다는 말처럼 그 결과로 죽음에 대한 공포가 전혀 없다고 한다면 그 또한 축복이 아닐까 한다.

 

지난해 늦가을부터 그동안 없었던 토하는 증세가 계속되며 점점 야위어 가는 힘없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오뚜기를 사랑하는 주위의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힘든 일이었다. 거의 매일 토하는 괴로움 중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항상 밝은 미소와 함께 했으며, 화사하게 옷을 차려입고 예쁘게 가발을 쓰고 야위어 가는 몸의 다른 부분과는 달리 자꾸 부어 오르는 천근 같은 다리를 끌고서 다시 태어나면 춤 선생이 되고 싶다고 할 정도로 좋아하는  라인 댄스 클래스에 빠지지 않고 나타나는 오뚜기를 보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즐거움이었으며 용기와 희망을 주는 일이기도 했다.

뱃속의 종양이 거의 2 파운드나 될 정도까지 커져 먹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자 방사선 치료를 다시 한 번 시도해 보기로 했다. 요즘에는 옛날과 달리 방사선 치료가 많이 발달해서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으며 다른 부위에는 거의 피해를 주지 않고 또 부작용도 그리 많지 않아서 순탄한 길을 걷는 것과 같았다. 기력을 찾기 위해 매일매일 혈관으로 영양을 공급해 주는 TPN(Total Parenteral Nutrition)  을 하루에 열 시간이 넘게 맞는 것 이외에는 말이다.

방사선 치료의 결과는 의외로 좋았다. 뱃속의 종양이 80%가 줄어들었다는 것이었다. 그 좋은 소식을 제일 먼저 전해 주겠다고 전화를 했을 때 그 기쁨이 얼마나 컸는지 모른다.

이제 또 한 십 년은 너끈히 살겠구나. 우리 곧 만나서 예쁜 옷도 사고 맛 난 것도 먹고 그러자 .” 

 

그러나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방사선 치료가 끝나고 나서 나타나는 부작용이 오뚜기를 괴롭히기 시작한 것이었다. 구토와 오한 그리고 설사를 반복하면서 몸은 점점 야위어 가고 있었고, 다리는 이젠 걸을 수 없을 정도로 부어 올랐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의사는 뚜렷한 원인을 알지 못하고 그냥 증상의 완화를 위한 투약만을 계속하는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어 답답하게까지 생각이 들 정도였다. 또한, 증상이 극히 악화된 다음에 가서야 주치의는 다리로 내려가는 임파선에 종양이 커져서 혈행을 막는 것이라며 모든 치료를 중단해 버린 것이었다. 그리곤 호스피스로 옮길 것을 종용했다.

내가 호스피스 병동에서 일 할 때만 해도 호스피스가 그렇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때였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호스피스의 진정한 의미를 잘 모르고 있었는데, 그것은 지금도 크게 변한 게 없는 것 같다. 호스피스란  아무 치료도 하지 않고 그냥 통증이나 완화시키면서 얌전히 죽음을 기다리는 곳으로 말이다. 진정한 호스피스의 의미는 palliative care 즉 편안하게 해 준다는 것이다. 환자의 마지막 순간까지 편안하게 해주기 위해서는 치료이든 투약이든 뭐든지 하게 되어 있다. 단지 비상사태가 돌발할 경우에 인공 소생을 시키지는 않는다. 그러나 16년을 함께 했던 오뚜기의 주치의는 3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오뚜기를 호스피스에 던지듯 보내 놓고는 또 한 번 포기를 아주 쉽게 해 버린 것이었다.

 

환자가 자기 몸을 의사에게 완전히 맡기는 것은 바람직한 것이 아니며, 환자는 자신의 병을 치료하도록 의사를 고용한 것이기에 자신의 치료방법에 있어서 어떤 요구도 어려워하면 안된다고 자신의 주장을 뚜렷하게 얘기해 오던 당찬 오뚜기도 이젠 중간에 쉬지 않으면 한 문장도 끝낼 수 없는 정도의 체력이 되어 의사의 소극적인 태도에 항의하는 것조차도 힘들어져 버렸다. 그러나 담당 간호사와 의사의 집요한 권유에도 불구하고 오뚜기는 약을 대량 투여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숨이 끝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기 몸을 스스로 가눌 수 있기를 원하며 또한 맑은 정신으로 머무르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동안 죽음을 준비하며 열심히 살아온 오뚜기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잊기 위해 무의식상태에서 생을 마감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래서 졸린 눈을 억지로 떠가며 깨어 있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이제 사랑하는 친구를 위해서 해 줄 수 있는 일은 없는 것 같았다. 얇은 미소를 띄우고 흐뭇한 표정을 짓는 오뚜기에게 평소에 좋아하던 노래를 불러주는 것밖에는.

 

주위의 많은 암 환자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었던 자신의 지난 16년은 다른 사람들의 30년보다도 더 알차고 축복받은 행복한 삶이었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오뚜기의  여정이 아무쪼록 평탄하기를 그리고 저 세상에서 좋은 춤 선생님을 만나 그렇게 좋아하는 춤으로 매일매일이 행복하기를 빌어 본다. 얼마 전에 춤을 더 잘 추어 보겠다고 새로 사 놓고 신지도 못한 댄싱 슈즈가 다 닳도록 말이다.

 

 

<아띠문학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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