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햇살님의 좋은 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

doggya 2010. 10. 10. 21:36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

 

 

 

 "자숙아, 어떻게 할래? 그만둘까?"

 "아니야, 한 번만 더 해 볼게."

 "괜찮겠어?"

 "응,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해 볼게."

 자숙은 시험관 아기 시술을 받으려고 산부인과 진료실에 들어

갔다. 벌써 이번이 다섯 번째였다.

 "자숙 씨, 좀 아플 거니까 참아요. 아셨죠?"

 "예."

 자숙은 시술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이미 다 알고 있었다.

그러나 다시 또 수술대에 오른 이유는 그만큼 아기를 간절히 원했

기 때문이었다.

 "악!"

 고통스러웠지만 꾹 참았다. 아기만 생긴다면 이 정도의 고통쯤

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이

번에는 꼭 성공하기를.

 동규 역시 아기를 바라는 마음은 똑같았다. 복도 대기실에서 기

다리는 동규의 마음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을 정도로

속이 타고 무거웠다. 모든 것이 자기 탓인 것만 같고, 또한 고통

받고 있을 아내를 생각하니 마음이 천근만근이었다.

 "제발 좀 이번에는 성공해라."

 동규는 마음속으로 이 말을 수십 번, 수백 번 주문을 외우듯 말

했다.

 시술이 끝나고 자숙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진료실을 나왔다.

 "괜찮아?"

 "응. 매번 하는 일인데, 뭐. 괜찮아."

 이따금 찾아오는 통증이 있었지만 자숙은 애써 미소 지으며 오

히려 동규를 먼저 걱정했다.

 "오빠, 많이 기다렸지? 가자. 쉬고 싶어."

 "그래, 그러자."
 몇 주간의 시간이 흘렀다. 자숙과 동규는 초조한 마음으로 함께

산부인과를 찾았다.

 "자숙아, 혹시라도 성공하지 못한다고 해도 너무 실망하지 마.

알았지?"

 "알았어."

 "정말이야. 울지 않기로 어제 약속했어."

 "알았다니가."

 자숙과 동규는 두 손을 꽉 잡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둘은 긴장

한 채 의사 선생님의 입만 바라보았다. 그런데 의사 선생님의 표정

이 그리 밝지 않았다. 둘은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도 틀리지 않았다. 결과는 시술 실패였다.

 자숙은 의사 선생님 앞에서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의사

선생님도 마음이 아픈지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자숙아, 울지 않기로 했잖아."

 "흑흑···."

 그러나 자숙은 더더욱 서러움이 북받쳤는지 더 많은 눈물을 흘

렸다.

 "의사 선생님,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자숙아, 일어나자. 응?

어서···."

 "오빠, 이제 우리 어떻게 해···.

 동규는 자숙을 부축하고 진료실을 나왔다. 동규도 소리 내어 울

고 싶었지만 그저 눈물만 삼켰다. 세상이 모두 다 끝난 것 같은 기

분이었다.

 

 한 해가 가고 두 해가 갔다.

 "우리가 잘 해낼 수 있을까?"

 "그럼. 넌 참 좋은 엄마가 될 거야. 네가 아이를 얼마나 좋아하

는데."

 "하긴 그래. 난 아이랑 지내는 게 가장 행복해."

 "그럼 나중에 너랑 오빠랑 어린이집 차릴까?"

 "와, 그게 좋겠다."

 자숙과 동규가 입양 단체에 간 첫날, 그 둘을 첫눈에 반하게 한

귀여운 예쁜 아이를 입양하기로 맘먹었다.

 사실 처음에는 망설임도 많았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의

자식을 어떻게 내 자식처럼 키울까 하는 두려움과 불안함으로 결

정을 쉽사리 내리지 못했다. 그런데 막상 입양 단체에 와서 아이

들을 보는 순간, 그런 마음은 눈 녹듯 사라졌다. 아이들이 모두 그

렇게 귀엽고 예쁠 수가 없었다. 가슴으로 낳은 자식이란 말을 이

해할 수 있을 정도였다.

 원장 수녀님은 아이를 자숙의 품에 안겨 주었다.

 "잘 키우세요. 사랑의 마음만 있다면 모두 다 행복할 겁니다."

 "감사합니다."

 원장 수녀님은 그 아이에게 '미희'라는 이름을 지어 줬기 때문

에 자숙과 동규도 아이의 이름을 그대로 부르기로 했다.

 "미희야, 엄마야. 엄마. 우리 미희 참 예쁘네."

 "까르르."

 미희도 엄마의 품이 따뜻했는지 방긋 웃었다.

 

 젖먹이였던 미희도 어느새 자라 이제는 스스로 일어날 수 있게

되었다.

 "그래그래. 그렇게 하는 거야. 한 발 더. 그래. 잘 걷는다."

 미희는 방긋방긋 웃으며 자숙에게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왔다.

 꽈당.

 아직은 걷는 것이 서툴러서인지 곧잘 넘어졌다.

 "아팠어? 엄마가 호, 해 줄게."

 자숙은 미희를 껴안으며 다시 말했다.

 "미희야, 엄마 해 봐. 엄마!"

 그러자 옆에 있던 동규가 웃으며 말했다.

 "이제 겨우 일어서기 시작했는데 무슨 말을 한다고 그래?"

 "아니야, 말할 수 있어. 분명히 눈빛으로 말했어. '엄마, 제 이름

을 불러 주세요. 그럼 엄마라고 할게요.'라고 했단 말이야."

 자숙은 미희의 눈을 맞추며 계속해서 말했다.

 "엄마라고 말해 봐. 미희야, 넌 할 수 있어. 엄마 딸이니까 넌 할

수 있어. 자, 엄마라고 해 봐. 엄마, 엄마."

 그런데 우연인지, 미희가 입을 열었다.

 "음, 음, 마."

 자숙은 두 눈이 휘둥그래졌다. 그리고 흥분된 말투로 말했다.

 "오빠, 들었지? 들었지? 엄마라고 했어. 분명히 들었지?"

 "어, 들었어."

 자숙의 얼굴 가득 기쁨으로 물들었다.

 "내가 우리 미희한테 칭찬을 자꾸 해 주니까 엄마라고 하잖아.

오빠, 이게 바로 칭찬의 힘이야! 칭찬하면 고등어도 춤춘다고 하

더니 그 소리가 딱 맞네."

 "고등어가 아니라 고래야."

 "고래든 고등어든 그게 무슨 상관이야. 하여튼 내가 우리 미희

말 트게 했어. 와, 신난다."

 "그래그래. 미희 엄마 장하다. 우리 미희도 장하다."

 그날 밤, 자숙은 자신의 볼을 미희의 볼에 비비며 한참을 기뻐했

다. 그 옆에서 동규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을 흐믓하

게 지켜보고 있었다.

  

 내가 가진 것에 대해 늘 감사해야 합니다. 또한 그 존재만으로 만족

하며 더 이상의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됩니다. 이 세상에서는 원하는 걸 아

무리 애써도 가질 수 없는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늘 더 많은 것을 채우려고 했지, 정작 아무것도 가지지 못

한 자들의 아픔을 진심으로 헤아려 본 적이 없습니다. 주위를 둘러보

면 분명히 말할 수 없는 아픔을 겪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의

마음을 다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작은 위안과 용기를 건네는

관심이 필요합니다.

 

 

출처 : 엄마, 정말 미안해(김현태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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