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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졸업장

doggya 2010. 10. 11. 06:56

 

 

할머니의 졸업장

 

 

 

 초등학교 졸업식 날, 민규와 할머니는 꽃다발을 한 아름 안

고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어머니, 축하해요! 그리고 민규! 너도 축하한다!"

 "그래, 고맙다. 며늘아기야."

 "엄마, 고마워요."

 오늘은 이 가족에게 무척 기쁜 날이다. 민규와 민규의 할머니가

함께 초등학교를 졸업했기 때문이다.

 "어머니, 그동안 참 고생 많으셨어요."

 "아니다. 6년 동안 너무나 행복했다. 뒤늦게나마 이렇게 공부를

할 수 있었다는 게 정말로 기뻤는데···.나보다는 민규가 고생이

많았지."

 할머니의 말처럼, 사실 민규는 마음고생이 심했다. 할머니와 함

께 학교를 다닌다는 것이 친구들에게는 놀림감이 된 것이다.

 

 2학년 때, 민규와 할머니는 공교롭게도 같은 반이 되었다. 어린

민규에게는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수업이 끝난 후 친구와 밖

에서 좀 놀다가 집에 가려고 하면, 할머니는 어김없이 뒤에서 민

규를 불렀다.

 "민규야, 어서 집에 가자."

 그뿐만 아니었다. 수업 시간에 친구와 장난을 치면 할머니가 눈

치를 주곤 했다.

 게다가 할머니 때문에 창피를 당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한번은 수학 시간이었다. 선생님이 할머니에게 구구단을 외워 보

라고 시켰다.

 "민규 할머니, 일어나서 구구단 6단 외워 보세요."

 "예, 육일은 육, 육이 십이, 육삼··· 육삼··· 육삼 십구!"

 순간, 교실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하하하. 육삼 십구래!"

 "할머니, 그것도 몰라요."

 "민규야, 너희 할머니는 왜 그러시냐?"
 할머니는 머리를 긁적이며 웃음으로 넘겼지만 민규는 달랐다.

오히려 자기가 틀린 것처럼, 민규가 더 얼굴을 붉히는 것이다. 정

말로 할머니가 창피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그렇다고 할머니와 함께 학교 다니는 게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

다 싫은 것만은 아니었다. 쉬는 시간 종이 치면, 아이들은 할머니

주위로 곧잘 모여들었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에···." 하며 운을 떼는 할머니의 옛날

이야기는 참으로 신기하고 흥미로웠다. 어떤 아이는 쉬는 내

내 화장실도 안 가고 이야기를 듣느라, 수업 시간에 곤란을 겪은

적도 있었다.

 "와, 재미있다!"

 "또 얘기해 주세요."

 "오늘은 여기까지. 내일 또 해 줄 테니까 기대하렴."

 "네!"

 "민규, 넌 좋겠다. 집에서도 옛날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니까."

 쉬는 시간만 되면 민규는 어깨를 우쭐거렸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손자 녀석과 6년간의 학교생활을 마

감하는 할머니의 감회는 남달랐다. 그러다가 졸업장을 받아 드는

순간, 옛날 생각이 났는지 할머니는 그만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할머니, 왜 울어요?"

 "응, 너무 기뻐서 그래. 이 졸업장을 받으니 너무나 행복해서 그

래. 공부 못한 게 평생 한이었는데 이제야 그 한을···."

 할머니는 개근상을 받았다. 배움에 대한 열망이 그만큼 간절했

다는 증거일 것이다.

 "어머니, 앞으로 어떻게 하실 거예요?"

 "앞으로?"

 "예, 공부 계속하실 거예요?"

 "배우는 즐거움이 이렇게 큰 줄 몰랐다. 멈추기 서운한데, 어떡

하지?"

 "그럼 더 배우셔야죠."

 "나이 먹고 주책이라고 놀리는 게지?"
 "누가 그래요? 배움에 나이가 있나요? 민규랑 중학교 같이 다니

시면 되겠네요."

 "뭐? 하하하."

 할머니는 무척 기뻤다. 자신의 처지를 이해해 주는 며느리가 고

마웠고, 함께 학교를 다녀 준 민규가 고마웠고, 한을 풀도록 허락

해 준 아들이 고마웠다.

 "어머니, 졸업장 잘 보이게 가슴 앞으로 내미세요."

 "이렇게?"

 "예. 민규, 너도."

 "네."

 찰칵.

 햇살 좋은 날, 한 장의 졸업식 사진. 참으로 뜻 깊은 하루였다.

  

 그동안 살면서 자신의 어머니나 할머니를 무시한 적이 있습니까?
 "노인네들은 아무리 설명해도 몰라." "엄마는 초등학교도 안 나오고

뭐 했어?"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일지 모르겠지만, 배움의 기회를

놓친 이들에게는 큰 상처가 될 수도 있습니다. 먹고사는 게 더 절실했

던 시대에 살았던 우리의 어머니들을 우리는 존경하고 고맙게 생각해

야 합니다. 그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도 있는 것이니까요. 또한 배

우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나이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배움 앞에는

늦음이 없습니다. 배우는 일이 어찌 부끄러운 일이겠습니까? 배우는

기쁨, 알아 가는 즐거움.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권리이며 행복입니다.

 

 

출처 : 엄마, 정말 미안해(김현태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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