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지구여행과 체험/유럽

터키 파묵칼레 - 고대 로마 최대의 휴양지

doggya 2012. 2. 2. 05:52

 

오늘 발품을 팔면서 볼 것은 기원 전 2-3세기경에 성스러운 도시라는 뜻이라는 이름의 히에라폴리스라는 곳이에요. 

성스러운 도시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는 이 곳에 사원이 많이 건설되었기 때문이라고 해요.

지금은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이랍니다.


 

이 도시는 지난 번에 보셨던 솜으로 만든 성 절벽 위에 있는 이 도시로

길이가 2킬로미터이고 넓이는 13미터에 달하는그 당시로써는 아주 거대할 정도의 크기였다고 해요.

그리고 지난 번에 보여 드렸던 온천을 비롯한 몇개의 온천에서의 온천욕이 이 도시의 주된 역할이었다고 해요.

 

북쪽 기슭에 있는 공동묘지는 당시의 터키지역에서 가장 크고 잘 보존된 것이었다고 하네요.

지난 번에도 잠깐 말씀을 드렷지만,

온천에 와서 병을 고치지 못 하고 여기서 죽은 사람들의 묘지까지 다 여기 있다고 하니 클 수 밖에 없었을거에요.


고대 그리스 시대인 헬레니스틱 때까지 합쳐서 1,200 개가 넘는 봉분이 있었다고 하고.

뿐만 아니라 초기 로마 크리스챤 시대의 석관과 고인들을 위한 사원들에는 300 개가 넘는 비문이 발견되었다고 하네요.

 


우선 입구에 잇는 고대 로마시대의 목욕탕을 개조한 박물관을 잠깐 들려 볼까 해요.

보시는 바와 같이 땅 속으로 한 참 들어가 있지요? 그 이유는요.


1345년에 대지진으로 많은 건물들이 허물어지고 시간이 지나면서 석회로 두텁게 덮혀 버리게 되었지요.

그것은 1887년에 독일의 고고학자였던 칼 후만이 최초로 발굴을 하게 되었답니다.

하지만 칼은 겉핧기만 하고 명성을 얻었을 뿐이고

진짜 발굴은 1957년에 이태리의 과학자인 파올로 베르조네가 시작하여 2008년까지 계속 되었답니다. 

 


전역에서 의사들이 환자들을 보내게 되면서 상주 인구만 10만 명에 달했다니 당시로는 굉장히 큰 도시였지요.

지금도 시로 승격을 하려면 십만명의 상주인구가 있어야 한다고 하니 그때로써는 굉장한 숫자였던 거 같아요.

그 십만 명의 인구 중 5만 명이 바빌론과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이주해 온 2,000 가구의 유태인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네요.

인구가 많아지자 활발한 상업 활동으로 상당히 부유한 도시였다고 해요.



그 옛날에 쓰던 그릇들을 보면 상당히 화려했다는 걸 알 수가 있을 거 같지요?


기원 전 2세기에 건설된 이 목욕탕은 거대한 돌과 시멘트를 이용해서 만들었는데, 작은 여러 개의 방들은 서로 연결 되게 만들어져 있답니다.

그 작은 방들은 목욕탕 뿐만이 아니라 체육관, 도서관으로 쓰였다고 하네요.

지금은 그 작은 방들 중에서 몇 개를 박물관 전시관으로 쓰고 있어요.



그 당시에라고 구겨진 옷을 입진 않았엇네요. 이건 흙을 구워서 만든 다리미에요.



크리스챤이 주를 이루고 있었던 것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 종교적인 물품들도 상당히 많이 있었어요.


처음 목욕탕으로 건설되었을 때의 규모는 140 미터에 100 미터 크기 었다고 하는데, 

큰 방 하나의 크기가 20 미터에서 32 미터였으니 꽤나 큰 규모엿지요?

그리고 벽들은 모두 대리석으로 장식되었었다고 하니 참으로 부유했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당시의 생활상을 조각한 거 같군요.



그래도 그렇게 많이 손상되지 않은 것은 어쩌면 오랫동안 땅 속 깊이 파묻혀 잇었기 때문이 아닌가 하네요.



그리스나 로마시대의 조각들을 보면 항상 느끼는 거지만, 돌을 어쩜 진짜 헝겊처럼 깍았을까 ~ 하는 거에요.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아닌가 하는데...

 


박물관을 나오니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게 언덕 위에 있는 원형극장이네요.



왼쪽으로 난 언덕길을 올라가면 극장 뒷쪽으로 출입문이 있는데, 거긴 언덕 위의 평지에요.

그 이유는 원래 이 극장을 지을 때 언덕을 깍아서 거기에 기대어 만든 것이라서 굳이 높게 벽을 쌓고 담을 세울 필요가 없었던 거지요.

 

 

이 극장에는 4개의 출입구가 있고 그 입구들은 모두 대리석으로 장식이 되어 있었답니다.

아래층에 20열과 윗층에 25열이 있었으며 모두 합쳐서 15,000 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었다고 해요.

 


그리고 사람들이 오갈 수 있는 통로가 모두 8개가 있었다고 하니 꽤나 큰 규모였던 거 같지요?



열광하는 사람들로 꽉 찼었을 자리는 텅 비어 있고, 관광객만이 쓸쓸함을 덜어 주고 있군요.



가운데 있는 대리석으로 만든 반원형의 벤치는 양쪽에 사자가 조각되어 있는데, 왕이나 또는 높은 지위의 사람이 앉았었다고 해요.



저 문 뒤에서 많은 글래이에이터와 사자들이 가슴 조리며 기다리고 있었겠지요? ㅠㅠ

하지만 ~~

이 원형극장은 지금도 축제나 또는 음악회가 열릴 때 사용하고 있다고 하니 그때처럼 목숨을 걸고 가슴 조리는 사람은 없겠지요? 


보시다시피 이 극장은 다른 건물들에 비해서 상당히 잘 보존되어 있는 편이라고 해요.

보물이라고 할 수 있는 입구에 있는 두 개의 타워와 대리석 조각들이 아직도 그 모양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답니다.



그 문은 지금은 이렇게 굳게 닫혀 있지만...


이 원형극장은 기원전  2세기에 건설된 것인데, 17년에 지진으로 많이 손상된 것을 60년에 다시 보수를 한 것이라고 해요.

위에서 보신 객석은 옛날 것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보존이 되어 있었다고 해요.



이 많은 돌들이 언제나 제 자리를 찾아 갈런지.... 어쩜 영원히 찾지 못 할 수도 있겠지요? ㅠㅠ

 

 

이 도시는 크리스챤이 주를 이루고 성했다가 12세기에 지난 번에 안내해 드린 바 있는 코냐을 점령한 셀축 터키가 점령하게 되었다고 해요.

그 후 30년만에 이 도시는 완전히 버려진 도시가 되고 14세기에는 완전히 폐허가 되어 버렸지요.

그렇게 성하던 큰 도시를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폐허를 만들었다는 게 참 안타까웠고, 또 어리석게 느껴지대요.



이 길은 넓이가 3미터에 달하고 이 도시에는 타워만 28개가 있었다고 하니 그 규모를 짐작할 수가 있겠지요?

길은 모두 거대한 석회암으로 포장이 되어 있었고, 양 옆으로는 주요 건물들이 줄지어 있었다고 하는데, 아직도 발굴이 진행되고 있다네요.



바닥에 깔린 석회암에는 이렇게 아름다운 조각을 해 놓았는데, 아직도 그 조각이 확실하게 보이네요.



큰 길 뿐이 아니고 이렇게 뒷 골목에 가지도 석회암으로 길을 내었으니 비가 와도 발 적시거나 먼지가 옷에 묻을 염려는 없었을 거 같네요.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은 작은 뒷길은 이렇게 나무가 길의 허리를 뚝 잘라먹고...

 

 

이 곳에는 섭씨 35도에서 100도까지의 온도가 다른 온천이 17개나 있다는 걸로 한 가지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건 분명한 지진지대라는 거에요.

2 천년이 넘은 세월동안 수 없이 많은 지진에 많이 파괴되었다는 것이 놀라운 일은 아니겠지요?



건물은 땅에 파 묻히고 그 위에는 이렇게 예쁜 꽃들이 피고지고...그렇게 세월이 많이도 흘러 갔네요.



원형 극장에서 거의 같은 위치의 높이에 좀 떨어진 언덕 위에 있는 이 집은 선지자인 성 필립이 살던 집이랍니다.

성 필립은 5세기경에 예수님보다 더 힘들게 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꺼꾸로 매달려 순교를 했는데,

죽은 다음에 여기 묻혔다가 나중에 위에서 보신 로마시대의 목욕탕을 사원으로 개조한 곳에 묻혔다고 해요.

일설에는 십자가에 꺼꾸로 매달린 게 아니고 나무에 발목을 매달아 순교했다는 설도 있다고 하네요.


 

기둥만 서 있는 모습을 보자니 어쩐지 서글픈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흥청대던 그 모습은 완전히 사라져 버리고...ㅠㅠ



앞에 보이는 문은 도미시안 게이트라고 부르는데, 이건 도시의 북쪽 끝에 있는 거랍니다.



이 것은 님피엄 Nymphaeum 이라고 하는데, 이 도시를 지켜주던 아폴로 신전 앞에 2세기에 건설된 것이라고 해요.

여기는 이 도시의 집들에 물을 공급해 주던 저수지의 입구지요.



이 것은 4세기 경에 세워진 비잔틴 게이트라고 하네요.

이 문은 로마시대에 세워진 것이지만, 이 문 너머에 있는 과거 비잔틴 시대의 도시로 들어가는 문이라고 해요.

 


이 것은 폭이 14미터에 달하는 정문이에요.



군데군데 위태하게 보이는 기둥들이 아직 서 있지만, 다음의 지진에도 살아 남을 수 있을지 의문이네요.



이 도시를 지켜주던 아폴로 신전의 모습이에요.



모두가 무너져 버리고 길도 묻혀 버려 방향을 찾아 가는 게 쉽지가 않아 가던 곳을 또 가고 또 돌고 그렇게 되더라구요.



이런 타워가 여러개 있었다고 하는데, 얼른 보고 생각난 게 첨성대였어요.

하지만, 용도는 달랐던 거 같아요.



꽃은 아무 생각없이 피고 지고를 계속하겠지요?



이쯤 되니 완전히 방향감각을 잃어 버리게 되어 버렸어요. 안 그래도 길치가 ~~ ㅠㅠ



그냥 골목 골목 헤매고 다니게 되었지요. 그래도 뭐 길 잃을 염려는 없으니깐 ~ ㅎㅎㅎ



이게 또 다른 목욕탕이라고 했던가 ~~~ 까리까리 하네요. ㅠㅠ

 

 

골목 골목 누비다가 마음을 잡고 일단은 길을 따라 걷기로 했어요.

해가 많이 낮아진 걸 보니 솜으로 만든 성에 서둘러서 가야 할 거 같아서요.

 

 

갈 때는 몰랐는데 올 때는 왜 이리도 먼지... ㅎㅎㅎ

 


중간에서는 막 뛰어서 왔는데, 딱 맞는 시간에 도착한 거 같네요.

막 해가 뉘엿뉘엿 낮아지고 햇빛의 색깔도 변해가기 시작하더라구요.

다음엔 이 곳의 색깔이 석양에는 어찌 변하는지를 보여드릴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