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의 글들/수필

개구멍

doggya 2006. 5. 14. 05:33

아파트 계단을 내려가 건물뒤로 조금 걸어가면 개구멍이 하나있다. 그늘 나무 , 사람이 지나다닌 흔적도 없는 처럼  자란 잔디를 미안한 마음으로 조심조심  밟으며 건물 옆을 지나가면 있는, 아파트에서 나같이 게을러 멀리 돌아가길 싫어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깊은 배려로 철망담 구석을 뚫어 만들어 놓은 구멍이다. 쇠창살로 근사하게 만들어 자물쇠까지 설치해논 옆의 고급 주택단지의 버젓한 문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 없지만 그래도 아파트 사람들에겐 것만으로도 감지덕지다.

 

구멍을 지나 가파른 언덕을 조심히 오르면 트인 뚝이 나온다. 한쪽 밑으로는 샌프란시스코만으로 흘러들어가는 조그만 강이 흐르고 있다. 말이 좋아 강이지 일년에 비가 올때를 제외하고는 물보다도 울창하게 우거진  물풀과 제법 나무들이 많은, 개천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그런 곳이다.

 

 

                                                      바로 바로 요기

 

다른 한쪽 옆으로 있는 아파트 단지와 잡풀들과 이름도 모르는 나무들이 우거진 자연보호 구역을 따라 완만한 커브를 만들고 있는 길은 걷기에도 뛰기에도 아주 좋다. 사람들이 많이 다녀서인지 길이 다저져 있어 밑을 조심할 필요도 없이 그냥 쉽게 발을 딛으면 된다. 앞도 옆도 트이고, 지나쳐 가는 사람들과 목례나 미소와 함께 "Hi" 교환하며 가는 길은 심심하지가 않다.

 

지나치는 사람이 없어도 괜찮다. 밑으로 흐르는 개천도 보고, 하늘에 떠있는 구름도 보고, 아파트 공사장에 드나드는 트럭의 숫자도 세어 본다. 개구리 소리, 이름 모를 소리, 바람소리에도 귀를 기울여 보다간, 사람 발자국 소리에 화들짝 놀라 달아나는 몸둥이보다도  귀가 산토끼와, 금방이라도 밟힐것 같은 조그만 도마뱀의 움직임에 같이 화들짝 놀라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차가 다니는 길까지 오게되고 여기서 고민이 시작된다. 찻길을 건너 건너편 끝까지 멀리 갈까, 아니면 강건너 반대편 뚝으로 돌아서 갈까, 자신과의 싸움이 시작된다. 그러나 싸움은 절대로 오래가는 일이 없다. 내일은 멀리 갈것을 자신에게 다짐하길 한번 하며, 다시 뒤돌아 오던 길로 발걸음을 옮기는 것으로 타협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매번 느끼는 일이지만 자신을 설득하기는 쉽다. 한번도 실패를 본적이 없으니 말이다.

 

되돌아서 조금 걷다보면 뚝에서 개울 밑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길로 내려서면 몰과 풀에 가까워 진다. 오리나 학같은 물새들에도 가까워 진다. 그러나 사람들한테서는 멀어진다. 길에는 야생화들이 뚝쪽을 뒤덮고 있어 아름답지만 돌도, 잔나무 가지 또한 많다. 그래서 밑을 조심하지 않으면 돌뿌리에 걸려 넘어지기 십상이고, 옆을 조심하지 않으면 잔나무 가지에 긁히기 십상이다.

 

물길을 따라 길이 생기다 보니 길도 윗길 보다는 꼬불랑거리고 제법 언덕도 있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이 없어도 그렇게 지루하지가 않다.

나무가지를 피하며 밑을 조심하며 정신없이 걷고 뛰다가 앞을 보면 길이 만치서 구부러져 있는 것이 보인다. 구비를 지나면 어떤 길이 있는지 지금으로선 전혀 수가 없다. 거기까지 가서 보는 밖에는 방법이 없다.

 

구비도는 곳까지 보면 언덕이 앞을 막을때도 있고 내리막 길이 펼쳐지는 수도 있다. 거기서 앞을 보면 다른 구비길이 만치 놓여있다. 이번에도 거기까지 봐야 다음이 어떤지를 안다. 거기까지 가면 다른 구비가 나오고... 구비만 지나면 뚝위로 올라가는 길이 보이겠지하는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져 버린다. 그래도 거기에는 희망이 있다.

'오늘 중으로는 위로 올라가는 길이 나오겠지. 그러면 힘든 길이 끝나겠지.'하는.

 

그러나 희망도 좋지만 이젠 점점 피곤해 지는데... 돌뿌리에 걸리지 않으려고 다리를 번쩍번쩍 들며 뛰었더니 넙적다리도 뻐근해오는데... 힘도 들고 지루해지기 시작하는데...  길로 내려 온걸 후회하기 시작한다.

만치 위로 올라가는 길이 보인다.

아이고 언덕이구나,

기대도 없이 터벌터벌 걸어 올라가니 뚝위다.

 

! 드디어 올라 왔구나.

트인 전망이 시원하다. 바람도 시원한 같다. 외로운 밑길과는 달리 사람들도 많고, 그들은 피곤한 기색도 없이 열심히 뛰거나 걷거나 아니면 사람과의 대화에 열중해 있다. 드디어 편한 길로 다시 올라오게 된게 너무 기쁘다.

 

삶도 이랬으면... 윗길처럼 앞도 트이게 보이고 바람도 시원하게 불어 줬으면. 내가 지금 어디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한눈에 있었으면...밑길에서 처럼 피곤하게 번쩍번쩍  다리를 들어도, 밑을 조심하지 않아도 되는 편편한 길이었으면... 나뭇가지에 긁힐까봐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지 않아도 됐으면... 앞을 없는 구비길이 고만 나왔으면...

 

밑길이 뚝길같이 편하지도 않고 외로운 길이긴 하지만, 그런대로 변화가 있고 약간은 어려움을 극복한다는 만족감이 있어 그것도 그리 나쁘지 만은 않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험한 길이 언제 끊날지를 아니까,   끊난다는 아니까 힘든 즐길 있다. 조만간 위로 올라가는 길이 나올 확실히 아니까, 그래서 아무런 망설임 없이 길을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택할수 있는 것이다.

 

삶도 그랬으면... 어려움과 고통이 언제 끊나는지 있었으면... 위로 올라가는 길이 언제 나올지를 있었으면...  이젠 정말 피곤한데. 스스로 이런 삶을 한게 아니었는데...  아무도 괴롭히지 말고, 나한테 부딪치지 말고, 그냥 "Hi" 하면서 지나 수는 없는걸까? 서로 만났다는 표시를 그냥 미소와 목례로 대신하며 스쳐 지날 수는 없는걸까?

 

사람은 내가 험한 밑길에서 고생과 후회를 없이 하다가 올라와, 지금 얼마나 좋아하고 있는지를 알기나 할까? 아니 그런 길이 바로 밑에 있다는 조차도 알기나 할까? 애라, 사람이 안들 모른들 무슨 차이가 있겠나? 하는 생각을 하며 스쳐가는 사람에게  미소를 보낸다.

 

그리곤 아무 생각없이 다시 개구멍으로 기어들어 온다. 내일도 이런 생각들을 되풀이하게 될까하는  생각조차도 없이. 그냥 디딜 곳도 시원치 않은 언덕에서 미끄러져 굴러 떨어지지 않으려고 힘빠진 다리로 안간힘을 쓰는 밖에는.

매일매일 삶이 힘들다고 불평에 불평을 하면서도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뛰어 넘느라 바빠, 불평했던 조차도 잊어버리고 다시 이불속으로 들어가는 많은 저녁들처럼.

 

 

(월간 순수문학 2005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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