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의 글들/수필

드림캣쳐

doggya 2006. 5. 18. 02:30

 

자, 이제  옆방에 조촐하게 음료수와 쿠키, 포도주와 치즈가  준비됐고, 방송국에서는 이미  다녀갔고 또  잡지사와의 인터뷰도 끝났으니, 이젠  손님맞을 차례만 남았다.  숨을 고를 사이도 없이 화랑의 문을 열자마자  생각했던 것 보다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전시장으로 몰려 들어오기 시작했고,  전시장은 금방사람들로 꽉 차 발디딜 틈이 없게 됐는데도, 내가 기다리는 사람은 전시장안 어디서도 볼 수가 없었다.

왜 아직도 안 올까? 꼭 온다고 했는데...

관객들과 대화를 하면서도 내눈은 문에서 한시도 떠날 수가 없었다.  내가 그렇게 눈이 빠지도록 기다리고 있던  사람은  돌보던  환자중에 한사람,  그리고 지금  이 전시장에 걸려 많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는 한편의 그림의 주인공이기도 한 레이였다.  

 

무용수였던 레이는 체구가 작아 나이보다 어려보이는 35살의 말기 에이즈 환자였다. 여느날과 다름없이 교대근무 리포트를 끝내고 그의 방에  들렀을때, 그는 열심히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다. 왠만한 여자 손보다도 더  가냘프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아주 정교하게 자수를 놓아서  선머슴같은 나를 감탄하게도, 그리고 부끄럽게도 만들곤 하던 그 였었는데,  오늘은 전혀 새로운 걸  만들고 있었다.

 

그게 뭐니?

이거 드림캣쳐라고 하는 거야.

그게 뭔데?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쓰는 건데, 이 걸 머리맡에 걸어놓고 자면 악몽을 막아준대. 내 조카한테 선물하려고 만드는 거야.

선물? 그럼 너는 막아야 할 악몽이 없니?

글쎄..난 언제나 좋은 꿈만을 꾸니까  그런거 필요없어.

 

그날 레이는  한달이 가깝도록  멈추지 않는  설사를  치료하기 위해서 암치료약을 투여받기로 되어 있었다.  보통은 그런 약물을 투여할 때는 암병동으로 옮겨 치료한 후, 다시 되돌아 오는 게 통례였다. 그런데  그날 따라 암병동에 빈 병실이 없어, 그냥 자기방에서 치료를 받게 되었는데,  공교롭게도 그 약물에  부작용을 일으킨 것이었다.  체온은 106도(섭씨 42도)를 넘어 오한으로 이가 부러질 정도로 덜덜떨며, 금방이라도 멈출듯 숨을 몰아쉬는 레이의 모습은 너무나 처참했으며,  레이의 손을 붙잡고 눈물 범벅이 된 얼굴로 어쩔 줄 몰라하는 그의 애인의 모습은 더 가슴아픈 광경이었다.

 

암병동에  급히  방을 마련하게 한 뒤,  늪에 빠진듯 조그만 몸이 파묻힌 침대를  3충에서 5층의  암병동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축 늘어진 그의 팔에 꽂힌 바늘에서 이어져  가느다란 호스에  연결된채  침대머리에  매달려 덜렁덜렁 소리를 내며 흔들리고 있는 정맥주사백과 발치에 아무렇게나 놓인 그가 만들던 드림캣쳐가 이상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고,  급히 굴리는 침대의 바퀴소리만이 늦은 저녁 조용한 병원 복도의 정적을 갈라 놓고  있었다. 가는 도중내내 나는 마음속으로 울고 있었다. 별일이 없었으면. 그러나 오히려 레이는  차분한 얼굴에 미소까지 띄우면서  별일이 없을거라고 오히려 내손을 잡고 위로를 해주고 있었다.

 

며칠이 지나도  레이의 상태는호전되질 않아 그냥 암병동에 머물러 있게 되었고.   매일 저녁 휴식시간이면 그의 병실로 올라가 얘기하다 오는 것이 일과가 되어 버렸다. 그러다가 휴일을 맞게 되었고, 그 다음날 병동으로 돌아왔다. 아직 레이는 우리 병동으로 돌아오지 않은 상태라서 그의 병세가 몹씨도 궁금했지만, 그날은 왠일인지 너무 바빠 저녁시간 동안에 레이를 방문할 수가 없었다. 11시 반이면 끝나야 할 일에서  새벽  한시가 지나서야 겨우 해방이 되었고  너무 늦은 시간이라 좀 망설였지만,  애타게 기다렸을 레이를 생각하면 그냥 퇴근할 수가 없었다.  

 

레이는 오늘 일찍 잠이 들었는데.

나를 알아본  암병동의 간호원이 해 준 말이었다.

그래? 그럼 메모를 남길 테니까 내일 아침에 레이한테 전해줄래?

깊은 잠 들었을테니까, 네가 전화옆에 놓고 가지 그래? 아침에 보면 굉장히 좋아할텐데.

 

오랜동안의 밤 근무에서 내가 터득한 기술이 하나 있는데, 그건  도둑고양이 처럼 소리하나 안 내고 다닐 수 있는 거다.  뭐 그리 대단한 기술도 아니지만, 그래도 난 그 기술을 매일밤 아주 유용하게 써 먹었고, 또 그  덕분에 환자들 한테서 칭찬도 많이 들었으니 자랑할 만한 기술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왔다간다는 메모를 간단하게 쓴 후, 예의 그 기술을 발휘해 레이의 방으로 살금살금  들어갔다. 칠흙같이 어두워 아무것도 볼 수 없었지만, 병실의 구조에 익숙한 나는 아무 어려움 없이  전화를 찾아 그옆에 메모를 놓고 뒤돌아 섰다.

 

죠!

깜짝 놀랐다.  내가 깨웠나? 아니 그보다 나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응, 그래. 내가 너를 깨웠니?

아냐. 그냥 네가 옆에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막 잠이 깼어.

미안해. 다시 자라. 내일 저녁에 시간내서 다시 올테니까.

아냐. 잠깐 앉아서 나하고 얘기 할 수 있겠니?

나야  괜찮지만 너는 자야 되잖아?

하루종일 가는 곳도, 할 일도  없는데 뭐, 나중에 자도 돼. 그리고 너한테 해줄 얘기가 있어.

불도  켜지 않고 그냥 어둠속에서 의자를 더듬어 끌어다 침대옆에 놓고 앉아  손을 잡았다.

잠깐만 있다 갈께. 그래, 할 얘기가 뭔데?

너 내가 어제 중환자실에 갔었던 거 알고 있니? 너없는 사이에 내가 죽었던 거 알고 있어?

너무나 뜻밖이었다. 아무도 나한테 그런 얘기를 해준 사람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그게 무슨 소리야?

 

레이의 얘기는 이랬다.

어제 아침에 또 다시 투여한 약에 부작용을 일으켰는데, 이번에는 지난 번보다 더 심하게 호흡곤란이 와서 중환자실로 옮겨가게 됐었다는 거다. 혈압이  위험수준 이하로 떨어지면서  숨이 멈추어  의학적으로 죽은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정신은 말짱해서  의사와  간호원들이  심장에 전기자극을 주고 약물을 투여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며, 자기가 Out of body experience(신체이탈 경험)을  한 것 같다는 얘기였다. 그렇게 주위 사람들이 자기를 살리려고 애를 쓰는  광경을  한참 보고 있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다시 눈을 뜨게 됐다는 것이었다.

그 얘기를 듣는 동안 꼭 잡은 손을 타고  짜릿한 무언가가  전해져 옴을 느낄 수 있었다. 중환자실에서 있었던 일들이 내 머리속에 그대로  그림으로 그려졌다.  순간  강렬한 충동이 내 몸을 강한 전류처럼 휩싸고 도는 것을 느낄수 있었다.   그렇게 느끼자 참을 수 없이 가슴이 막 뛰었다.  그 밤, 뛰는  가슴으로 집에 돌아와  전율과도 같았던 그 느낌을 화폭에 담으며 해가 중천에 떠 올라올때까지 화실에 틀어박혀 있었다.

 

이틀 후에 레이는 다시 우리 병동으로 내려 왔고, 그에게 내 전시회 소식을 알렸다.  작품중에 하나는 바로  레이가 주인공이라는 것과 함께. 레이는  꼭 참석하겠다고 굳게 약속을 하고는 얼마후 퇴원을 했고, 나는 다른 병원의 호스피스 병동으로 일자리를 옯기게 되어 자주 볼 수 없게 되어 버린 것이었다.

 

연신 흘끔흘끔 문만 쳐다보던 내 눈에 레이의 친구가 보였다.

레이는?

어제 저녁에 병세가 악화돼서 다시 병원에 입원했어. 못와서 미안하다는 말을 전해 달라고 했어.

 

전시회가 끝난 날,  난 그림을 싸들고 레이의  병실을 찾아갔다. 레이는 자기 애인에게  그날 내가 올 것이라면서 아침부터 들떠 있었다고 한다. 도대체 내가 오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난 마음이  급한 나머지 연락 할 생각도 못했는데  말이다.  오랫만에 보는 그의 작은 몸은 뼈와 껍데기밖에 남지 않은듯 더 작아져 있었다.  그리고 아주 밝은 불빛아래서나 겨우 형태정도를 구별할 수 있을 정도로 시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침대발치에 놓은 그림을 마치 무엇이 보이기라도 하듯 초점없는 눈으로 한참을 응시하더니, 정확하게 그 그림을 묘사해 내었다. 얼굴은 상기되고 들떠  떨리기까지 하는 목소리와  기쁨으로 환해진 레이의 얼굴을 보면서 그의 애인과 나는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 후 얼마 안 있어 레이는 이 세상을 떠났다. 그의 애인에게서 꼭 간호원이 되어 자기처럼 고통받는 사람들을 도와주겠다는 굳은 약속을 받고 말이다.

눈이 평펑 쏟아지던  날, 그의 영결식이 있었다. 무릎까지 빠지는 눈길을 걸어 영결식장에 들어갔을때, 그 분위기는 날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가만있자……  내가 방을 잘못 찾았나?  영결식장안은  온통 축제의 분위기였다. 여행떠나는 사람을 배웅하고 돌아선 사람들처럼, 와인을 한잔씩을 들고 미소지으며  담소하는 모습들에서 슬픔의 그림자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모두들 끝나버린 레이의 고통을 축하하며, 다음 세상으로의 여행을 축하해주고 있는 것이었다.

누워있는 레이의 얼굴은 아주 평화로워 보였다. 금방이라도 일어날 것처럼  볼에는 홍조까지 띄우고…… 눈물을 감추며 그의 손을 잡고 작별을 한 다음 영결식장을 나왔다.

 

아직도 눈은 계속 펑펑 쏟아지고 있었다.

볼에 흐르는 물을 닦을 생각도 없이 눈속을 걸으며, 내 마음속에 떠오르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그렇게 정성스럽게 만들던 드림캣처는 지금 누구의 밤을 지켜주고 있을까?

 

(월간 문학의 창 2005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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