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의 글들/수필

908 호실의 귀신

doggya 2006. 5. 16. 04:57

전 세계 사람들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던 에이즈(AIDS) 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1990년대에 나는 시카고에 있는 한 병원의 에이즈병동에서 'Chinese Doll(중국인형)' 이란 별명을 들으며 유일한 동양인 간호사로 일을 했었다.

처음 인터뷰할때 부터 이상하게 느꼈던 것은 다른 병동에는 그렇게 많은 동양간호원(대개가 필리핀 출신)들이 에이즈 병동에는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때 내가 느꼈던 것은 서양사람들과 동양사람들과의 생각의 차이점이었다

돈을 벌기 위한 직업으로라기 보다, 남을 위해서 자기를 바쳐 봉사한다는 생각은 우리네들 보다 서양사람들이 더 투철해서, 자기 일신상의 위험같은 것은 그렇게 대수럽지 않게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1년에 평균 300명이 넘는 환자들이 목숨을 잃는 것을 지켜보면서 참으로 가슴아픈 사연도 많았고, 또 참 많은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인생의 목표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었다.

 

일을 통해서 만나 알게 된 한 호스피스 간호원과 어느날 얘기를 하다가 호스피스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처음 에이즈병동에서 일을 시작했을 때와는 달리, 그 사이에 좋은 약이 많이 나와, 병세가 호전되어 생명을 좀 더 연장하는 사람들도 늘었고,  또 입원하는 횟수들도 줄어들어 가고 있었지만,  아직도 삶을 포기해야 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았다. 그럴때 그들이 마지막으로 의지하는 곳이 호스피스였다.

 

가장 불행하다고 생각했던, 그동안 돌보아왔던 사람들 보다도 더 불행한 사람들이 있다면, 그 사람들을 위해서 일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눈시울을 적시는 환자들과 스태프들의 만류를 어렵게 뿌리치고 에이즈병동을 떠나, 당시에 유일하게 급성 호스피스환자를 받던 시카고 다운타운에 소재한 노스웨스턴 대학병원의 호스피스병동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그 곳에서도 '마더 테레사'를 연상케하는 인도출신의 간호원 하나를 빼면, 역시 동양 간호원은 아무리 눈을 크게 떠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에이즈병동에서의 경험으로 어느 정도는 이럴 것이다하는 마음의 각오는 되어 있었지만, 실제 상황은 그것을 훨씬 추월하는 그런 곳이엇다.

몸과 마음이 모두가 폐허가 돼버린, 그래서 금새라도 허물어져 버릴 것 같이 보여도, 인간의 생명력이란게 어쩌면 그렇게 질진것인지, 또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생명에 대한 경이감이 온몸에 소름이 돋게 하는 나날들의 연속이었다.

암으로 얼굴 반쪽이 썩어버려 목구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사람, 시체가 부패하는 것과 같은 악취를 풍기며 갈비뼈가 앙상하게 들어나 보이던 유방암 환자. 보통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버린 육체에 주어진 한정된 시간을 두고 이어져 가는 생명에 대한 환자자신들의 투쟁과 가족간의 끈끈한 정, 또는 추하기 그지없는 인간의 어두운 내면을 부끄럼없이 나타내는 사람들.

스무살 외아들의 장기를 오열하면서도 남을 위해 아낌없이 기증하던 어머니.

전혀 다른 세계속에서 나는 살고 있었다.

 

나는 그때 저녁 7시부터 아침 7시 반까지 12시간의 근무를 하고 있었다.

내 쉬프트(Shift) 에서 근무를 하게 된 첫날 밤에 같이 일하던 간호원이 내게 들려준 얘기들은,  밤에는 오가는 사람도 없어 문을 잠가두는 쥐죽은 듯이 조용한, 본관과 뚝 떨어진 외진 빌딩에 있는 호스피스병동은 으시시한 분위기까지 자아 내었다.

아무리 오랫동안 죽음과 생활하는 것에 익숙해진 나였지만, 긴 복도를 걸으며 멀리 앞에 있는 어두운 창문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등줄기가 오싹해지는 것을 느낀게 한 두번이 아니었다.

 

그때 그 간호원이 내게 들려준 애기란 이렇다.

이 병동의 긴 복도 끝쪽에 있는 908호실에서 가끔 귀신이 나타난다는 것이였다.

몇년전, 그 방에 가족이 없어 찾아오는 사람도 없었던 자그마한 체구의 여자 환자가 하나 있었는데, 낮에는 항상 침대 발치에 있는 소파에 앉아 하염없이 창밖으로 미시간 호수를 내다보았다는 것이었다. 그러다 그 환자는 그 방에서 외롭게 숨을 거두었는데, 그 이후부터 그 방의 환자들 사이에서 가끔 소파에 앉아 있는 귀신을 보았다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나왔다는 것이다.

다소곳이 앉아 있는 자그마한 체구의 여자를...

 

매일매일, 적게는 하나에서, 많게는 4-5구의 시체를 내 손으로 백에 넣어 영안실로 보내야 하는 일을 거듭하며, 그 생활에도 익숙해져 가고 귀신얘기도 까마득히 잊어버려져 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드디어, 문제의 귀신이 나타난 것이었다.

며칠전 부터 908호실의 환자가 자기 방 의자에 밤에 사람이 앉아 있는 걸 자다 깨어나서 보았다는 얘기를 담당간호원에게 했다고 했다.

그러나 아무도 그 사실을 확인할 수도 없었을 뿐아리나  아무도 그 말을 믿으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몰핀 주사를 맞고 있던 그 환자가 환각을 하는 거라고 결론을 지어버리고 일소에 부쳐버렸던 것이었다.

아무도 관심조차도 보이지 않았었다.

 

그날따라 다른 날과는 달리, 죽음의 문지방을 넘나드는 위급한 환자가 없는 드물게 조용한 밤이었다.

오가는 사람도 없는 깜깜한 한 밤중, 몇개의 형광등 불빛만이 을씨년스럽게 비추는 널싱 스테이션에 앉아 환자일지를 쓰고 있었다.

종이위를 스쳐 지나가는 볼펜소리에 마저도 신경이 쓰일정도로 사위가 조용한데, 느닷없이 환자벨이 울렸다.

정막을 깨고 크게 울리는 그 소리에 의자에서 떨어질 정도로 깜짝 놀랐다.

모두들 자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마, 통증때문에 약이 필요한 모양이지,' 라고 생각하며 반사적으로 인터폰을 들었다.

 

"Is there anything I can do for you? 뭐가 필요한게 있읍니까?"

 

어떤 경우는 돌아눕다가 스위치를 깔고 누워 스위치가 눌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에, 우선 인터폰으로 확인을 했다.

 

"Yes, Quick, There is somebody in my room, again. 내방에 누가 또 있어요. 빨리 와봐요."

 

같이 일하던 간호원과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100 미터 단거리 선수마냥 전속력으로 그방으로 달려갔다.

이번에는 귀신을 잡아야겠다고, 귀신보다 빨라야 한다고 땅을 박차고 뛰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908호실에 들어간 우리는 기절을 할뻔 했다.

정말로 그 의자에는 지금까지 여러사람들이 묘사했던 것과 똑 같은 형체가 어둠속에 조용히 앉아서 환자를 멀끄러미 쳐다보고 있는게 아닌가?

우리의 발소리에도, 문을 여는 소리에도 한치의 동요도 없이 차분히 앉아 있었다.

 

드디어 만나는구나. 몇년에 걸쳤던 수수께끼를 이제야 풀게 됐구나하는 흥분과 함께 온 몸에 소름이 쫙 돋는 걸 의식했다.

얼른 전등의 스위치를 올렸다.

그 순간 우리는 허탈감에 배를 쥐어잡고 웃고 말았다.

 

그 귀신이란 바로 복도 건너편 병실에 있는 정신이 맑지 못한 여자환자였던 것이다.

하루에도 몇번씩 자주 복도를 서성거리는 걸 방에 데려다 주곤 하던 환자였다.

그 날 저녁에도 겨우 방에다 데려다 놓고 잠든 걸 확인 했었는데...

 

"What are you  doing here? 여기서 뭐하는 거예요?"

"I just felt lonely, I just needed somebody to be with. 그냥 외로워서, 그냥 누구랑 같이 있고 싶어서."

 

그 환자를 자기방에 데려다 눕혀 놓고, 침대옆에 앉아서 손 잡고 잠 들때 까지 한참 얘기를 나누었다.

물론 대부분이 듣는 역할이긴 하지만.

 갈때와는 달리 천천히 여유있게 널싱스테이션으로 돌아오면서, 오늘도 누군가가 나를 필요로 할때 그자리에 있을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하면서 어두운 유리창에 비치는 내 모습에 씨익 웃음을 보낼 수 있었다..

 

 

(계간  문학과 육필 2005년 봄여름호)

 

 

         시카고 다운타운 한가운데, 미시간 호숫가에 있는 노스웨스턴 메모리얼 병원.

                                     여기서 일어난 사건얘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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