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평화님의 선물

바람난 그해 여름의 기억스케치

doggya 2017. 7. 21. 11:55

바람난 그해 여름의 기억스케치 / 김진학

그날
엘리베이터를 탔다
매일 봐도 낯선 듯 침묵하는 사람들
(다음부턴 계단을 오르내려야지 마음먹으면서도
고장 날 때 외엔 꼭 타고 다닌다.)

바람 따라 
볼을 스치는 들꽃들의 행진이다
그래서 난 땀을 뻘뻘 흘리는 꽃잎을 보며
강둑을 걷는다
(동네 옆을 흐르는 안양천을 나는 늘 센강이라 부른다. 진짜 센강이 이렇게 잔잔하고 아름답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펑~
총소리만큼이나 요란했다
재채기를 하는가 싶었는데
15층에 사는 전직 교장선생님이
엘리베이터에서 방귀를 뀌었다
(좁은 공간이라 그런지 그렇게 큰 방귀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
14층 젊은 아줌마가 벽 쪽으로 돌더니 그 자리에 읹아
배를 잡고 웃었다 난 화가 나는데,
(여름방학이면 난 여행을 떠났다. 파리, 센강의 야경에 취했을 때 소매치기를 당했다.)

강가의 인라인스케이트장이 군데군데
움푹움푹 패여 아이들은 자전거를 타고 몇몇 부부들이 베드민트만 친다
(아예 어린이자전거장이나 베드민트경기장을 만들던지, 그래도 난 여기를 센강이라 부른다) 

퐁네프 다리를 건너 노트르담성당으로 가는 길은
빈주머니를 주물럭거리며 한국으로 돌아갈 궁리에 골몰해졌다
(전화로 파리에 있는 친구만 죽어라 볶아댔다.)

아까 만났던 15층 교장선생님과 14층
젊은 아줌마를 공교롭게도 엘리베이터 앞에서
다시 만났다. 3층을 오를 때 쯤
“이젠 정말 엘리베이터에서는 방귀 안 뀔 겁니다.”
젊은 아줌마는 또 돌아 앉았고
이번엔 내가 크게 웃었다
(아까 그 냄새보다도 더 역겨운 정치인들도 저렇게 솔직했으면...)
8층부터는 저 두 사람만 올라가야하는데...
(괜한 걱정을 한다.)

에펠탑 근처를 어슬렁거리며 친구를 기다렸다
마약에 취한 젋은 이들이 초점 잃은 눈으로
어슬렁거리는 거나
빈 주머니에 손을 꽂고 어슬렁거리는 나나
파리의 풍경이 슬펐다

그해 여름
난 그렇게 바람이 났다

● 평화문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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