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평화님의 선물

가을, 은행나무를 보며

doggya 2020. 2. 4. 21:33

가을, 은행나무를 보며 / 김진학

초등학교 옆엔 은행나무가 줄지어 있다

다시는 지지 않을 것 같은 잎들이

어느 날 한 번에 떨어져가면

가지만 남아 바람을 맞을 것이다

참 모진 이별이다

밤이면 안으로 은행 알을 만드는지

그 더위에도 잎 하나 떨어지지 않고

꿋꿋하게도 버텼다

소슬한 바람이 불어도 귀뚜라미가 울어도

하늘만 보며 푸른 잎만 달았다

길 건너 안양천엔 팔뚝만한 외국산 개구리가

제 집인 양 불법체류중이다

나무는 그래도 침묵한다

옆 건물의 어학원에는 우리말도 잘 못하는

아기들이 영어부터 배운다

세종대왕이 울고 갈 일이다.

문득

예수천국불신지옥이라고 쓴 커다란 글씨를

등에 붙인 사람이 찢어진 목소리로 소리치던

명동 한복판이 생각난다

지옥은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든

찢어진 목소리에 있는지 모른다

영근 은행알들이 떨어지면

하얗게 온 서리로 산고를 치른 잎들은

노랗게 변할 것이다

보기만 해도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은

하늘이 깊기만 하다

맞다

그리우니까 가을이다

● 2016년 가을

'사랑방 > 평화님의 선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봉식이  (0) 2017.07.21
바람난 그해 여름의 기억스케치  (0) 2017.07.21
포구기행 / 김진학  (0) 2016.04.05
춘자  (0) 2016.04.04
가을, 캠퍼스   (0) 2014.0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