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은행나무를 보며 / 김진학
초등학교 옆엔 은행나무가 줄지어 있다
다시는 지지 않을 것 같은 잎들이
어느 날 한 번에 떨어져가면
가지만 남아 바람을 맞을 것이다
참 모진 이별이다
밤이면 안으로 은행 알을 만드는지
그 더위에도 잎 하나 떨어지지 않고
꿋꿋하게도 버텼다
소슬한 바람이 불어도 귀뚜라미가 울어도
하늘만 보며 푸른 잎만 달았다
길 건너 안양천엔 팔뚝만한 외국산 개구리가
제 집인 양 불법체류중이다
나무는 그래도 침묵한다
옆 건물의 어학원에는 우리말도 잘 못하는
아기들이 영어부터 배운다
세종대왕이 울고 갈 일이다.
문득
예수천국불신지옥이라고 쓴 커다란 글씨를
등에 붙인 사람이 찢어진 목소리로 소리치던
명동 한복판이 생각난다
지옥은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든
찢어진 목소리에 있는지 모른다
영근 은행알들이 떨어지면
하얗게 온 서리로 산고를 치른 잎들은
노랗게 변할 것이다
보기만 해도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은
하늘이 깊기만 하다
맞다
그리우니까 가을이다
● 2016년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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